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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Dec 05. 2021

한계는 잠재력이 되었다

송은문화재단


익숙함을 넘어선 도태, 무정의 길. 그 사이에서 잠깐의 정적을 만들어내는 단순한 형태, 단순함을 넘어선 어떤 농후한 밀도를 지닌 건축.



SUBJECT1, 복잡성의 도시 안에서 단순함을 통해 드러내는 특이성


나는 서울이라는 과밀도의 도시를 걸을 때 건축의 복잡성과 유약함을 느낀다. 자기주장이 없는 건축과 천편일률적으로 감싸지기만 하는 높은 업무시설들의 반짝이는 유리는 어느새 더 약해 보이고 불안해 보인다.


그리고 '송은문화재단'을 보았다. 버스에서 내린 직후에 마주한 단단한 면과 기하학적인 볼륨은 복잡함 속에서 '단순함'이라는 특이성을 만들고 있었고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마냥 걷기만 했던 서울의 거리에서 누구든지 그 앞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건축의 꼭짓점을 올려다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층의 전시가 시작되는 공간에서 그들이 생각한 건축의 유형과 그것들의 변형, 그리고 도출된 형태를 보았다. 땅을 경험하고 건축의 유형을 선택하는 것은 건축의 시작이고 그 유형의 변형을 그려내는 것이 건축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자체가 올바른 순서라고 생각한다. 유형과 변형에 따른 다양한 스터디모델은 그들이 어떤 유형의 건축을 상상했는지, 그리고 땅이 가진 면적과 용적을 반영하여 어떻게 변형을 시도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건축과 공간의 용적을 '한계'라고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용적을 '잠재력'이라고 표현한다. 허용된 용적과 제시된 기능, 그리고 도시의 색깔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건축은 그래야만 하는 한계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닌 그렇게도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SUBJECT2, 주차램프의 유선 형태를 투영하여 조각화한 보이드


건축에 들어서면 지하 2층까지 열려있는 원형의 보이드를 마주하게 된다. 주차장의 원형 램프가 필연적으로 지니는 유선 형태의 벽을 그대로 내부 공간에 투영하여 조각한 원형의 보이드는 지하 2층의 전시장과 지하 1층의 주차장, 그리고 지상 1층의 로비 공간을 관통하고 있었고 동시에 통합시키고 있었다. 보이드는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한 상태로 1층의 난간으로 이어지고 난간은 곡선을 유지한 상태로 계단을 따라 2층의 전시공간을 향해 연속적으로 상승한다.


외부의 각진 형태감과는 반대로 내부는 원형의 보이드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기분 좋은 반전이었고 그 원형의 출처와 의미는 잔잔한 놀라움이었다. 주차장의 진입로와 하강하는 램프 역시 위치와 방법을 고민하는 데에 있어서 또 다른 한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은의 원형 보이드가 가지는 구심점이 만들어내는 유기적인 공간 구성을 경험하며 건축을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그것들은 외부의 형태와 배치를 결정하고 내부의 공간감과 결부되는 필수적인 고민거리이고 또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SUBJECT3,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지는 입면의 재질과 형태


도시에서 바라본 송은의 입면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단단하다. 마치 콘크리트로 빚은 조각 같다. 하지만 건축에 가까워질수록 단단했던 벽은 점차적으로 빛에 부서지고 동시에 벽이 지닌 무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일정한 그리드의 모듈과 그것에 담겨있는 나무 무늬는 그 어떠한 규칙도 없이 단단한 외벽을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빛은 무늬에 부딪히며 그림자를 만들고 단단하게만 보였던 벽은 어느새 나무 무늬가 새겨진 그리드의 집합으로 보인다.


그들은 벽을 채우는 질감을 통해서 건물의 형태를 '촉각적 휴먼 스케일'로 가져온다고 말한다. 그리드에 담겨있는 나무 무늬는 과거의 촉각적 경험을 촉매로 하여 그 질감이 상상되고 거대한 비석 같았던 벽은 건축에 가까워지고 그리드와 무늬를 인지하게 되면서 휴먼스케일로 전환된다. 표면의 질감을 통해 건축이 촉각적 휴먼 스케일로 다가왔다.




SUBJECT4, 모서리의 해체와 불완전함


시선이 건물의 꼭짓점에서부터 단단한 벽면을 타고 내려오다 보면 땅과 맞닿은 매스의 양 끝이 불완전하게 해체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면의 단단함을 유지하기 위해서일까, 대다수의 업무시설이나 상업시설이 저층부를 투명하게 처리하여 입구를 과시하는 것과는 반대로 그들은 송은의 입구를 측면으로 돌려세웠다.


매스 자체의 완결성을 어느 정도 덜어내고 차량과 사람들의 진입을 위한 통로를 만든 그들의 행위는 장식처럼 매달린 캐노피를 만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필로티를 만들었다. 또한 정면을 차지하지 않고 측면으로 돌려세워진 진입로 덕분에 정면의 단단함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한쪽은 차량 진입로, 다른 한쪽은 사람들의 진입로로 설정하여 매스를 덜어냈기 때문일까, 묘한 균형감마저 느껴진다. 처음엔 덜어낸 매스가 완전한 기하학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필로티 아래의 그늘진 입구를 바라보다 보니 매스의 불완전함은 그것 나름대로 충만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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