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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Mar 19. 2022

행위,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22.02.06



책, '미지의 문'을 읽으면서 나를 계속 괴롭히던 어떤 응어리를 조금은 풀어낸 것 같다. 순간 궁금해서 응어리의 뜻을 찾아보니, '가슴속에 쌓여 있는 한이나 불만 따위의 감정'이라고 한다.


맞다. 나를 괴롭히던 조그마한 응어리는 '불만'이었던 것 같다. 욕심에서 시작된 불만. 언젠가부터, '특별한 생각과 사고, 그리고 거기서 기인한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같은 것들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발현해 내지 못했을 때의 패배감도 느꼈었고 그것들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이들을 보고 좌절하기도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다소 굳어진 사람이 되었다.


책을 천천히 읽어내리다가 정확히 두 개의 지점에서 멈춰 섰다. (물론 책 모서리를 꼬집어놓은 부분은 많다. 다만 더 오래 머무른 지점이 있을 뿐.) 하나는 동사적 삶의 필요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라는 단순한 물음이었다. 하나는 명사의 고정된 관념에서 오는 편안함을 불편해했고 다른 하나는 기능의 종류와 배치가 아닌 건축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행위에 집중했다.


단순하지만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단어와 질문에서 잠시 멈춰 섰다. 건축을 마치 공부하듯이 학습해온 나는 건축을 명사로 분류하고 설명하는 것에 익숙했고 기능을 나열하고 끼워 맞추는 것에 길들여졌다. 나의 불만이 욕심에서 기인한 것인 줄로만 알았더니, 결국은 건축을 딱딱한 명사의 세계로만 바라보고 있었던 나의 아집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항상 건축을 들여다볼 때, '이 기능은 어디에 있어야 하고 어떤 모양을 해야 하고 어떤 기능과 함께 있어야 하고'와 같은 생각을 주로 했던 것 같다. 정작 가장 필요한 '이 기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라는 다양한 행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호텔에서 로비를 어디에 배치할지, 수용 가능한 인원은 몇 명인지, 어떤 모양으로 만들지가 아니라 호텔의 로비를 누가 사용하는지, 그리고 그곳에서는 '어떤 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기능에서 어떤 행위가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질문으로 남겨놓으면 이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그것을 어디에 놓으면 좋을지, 어떤 형태가 돼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제 모든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행위들을 관찰해야 한다. 그렇다면 '건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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