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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Apr 04. 2022

명백성에 대한 믿음

22.04.03


참여의 건축 - 잔카를로 데 카를로


책을 읽으면서 마주한 '명백함'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명쾌했다. 모호하고 규정되지 않은 것들이 주는 혼란스러움과는 반대로 체계적인, 그리하여 통제하기 쉬운 상태를 상상하니 앞서 생각했던 혼란이 자연스럽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책을 몇 장 더 넘기고 난 후에는 확연한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산업화가 도시를 뒤덮고 도시의 복합성이 혼돈으로 치부되기 시작하자, 도시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조닝(Zoning)이라는 개념이 대두되었다. 당시의 도시 개발자들은 조닝이라는 유산을 이어받아 도시계획의 문제점들을 하나둘씩 해결해나가기 시작했고(도시는 '분리'되고 '분류'되고 '위계화'되었다.) 그 이후에 모더니즘은 내부에 필요치 않다고 간주되는 행위들을 제거하고 필수적인 행위로 여겨지는 것들을 바탕으로 물리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들에게 있어서 '명백성'은 건축의 완전성을 결정하는 기준이었지만 명백성에 대한 믿음은 건축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이들을 수용하는 물리적인 환경의 관계를 고정적으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명백성에 대한 믿음이 도시의 복합성을 단순화하고 기능의 불확실성을 제거했다. 무엇이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도시는 파편적으로 흩어지고 비슷한 색끼리 접착되었으며 건축 안에서의 자율적인 행위가 관찰에 의해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어 소거되었다. 건축이 명백해지니 공간에서의 자유가 사라졌다. 명백함이 주는 편안함에 공감했던 나는 그것을 앞세워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한 과거의 지배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생각하니,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명백한 것들에 대해 불신을 가져야 한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공간이, 그리고 내가 계획하고 있는 이 공간이 이미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제거한 후의 모습은 아닐지 의심해야 한다. 물론 공간의 불확실성을 완전하게 신뢰하여 이에 대한 생각을 유보하는 것 또한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건축의 불확실성은 사용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닌, 분명하게 정의되어야 하고 논의되어야 한다. 이로 인하여 불확실성이 구체적으로 구현된다. 불확실성이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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