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어둠 뒤에 가려진 따듯한 온기]
나의 삶이 얇은 종이 한 장에 쓰여지고 있다면 다른 세계에서, 그리고 나와 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고 있는 또 다른 나의 삶 역시 어떤 종이에 쓰여지고 있을 것이다. 종이 위에는 온갖 선택과 그로 인한 행복과 불행이 뒤섞여 쓰여있다.
영화 속에서, 그 종이들이 가득 쌓여있는 모습을 보고 어떤 이는 종이와 종이 사이의 끝없는 어둠과 공허함을 이야기하고 자신을 소멸의 구덩이로 밀어 넣는다. 어떤 이는 그 종이들을 한 장 한 장 다시 열어보고 나서야 결국 그것들은 애초에 하얀색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인간 삶의 어둠 뒤에 가려진 온기를 확인한다.
개인의 행복과 불행을 겹쳐놓으면 아쉽게도 불행이 먼저 눈에 띈다. 그 불행의 곁에서 한없이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불행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살아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 불행을 어딘가에 꽁꽁 숨겨두고 그것에 가려져있던 행복을 꿈꾸는 사람도 있다.
삶이 빼곡하게 적혀진 그 종이는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분명 수많은 불행이 적혀있을 것이다. 비록 누군가는 그 불행이 적고 누군가는 불행이 많을 수도 있지만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다른 세계에 있는 그 누군가도 불행과 같은 인간 삶의 어두움을 경험할 것이다. 하지만 선택이 초래한 불행이 있다면 또 다른 선택이 불러오는 기대감과 행복, 그로 인한 인간 삶의 온기가 분명 있다. 다만 그 온기가 불행과 공허함, 허무와 같은 것들의 그림자 뒤에 가려져 있을 뿐, 삶이 무너지지 않게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은 분명 그 그림자 뒤에 가려져있는 따뜻한 온기다.
우리네 삶이 적혀진 종이를 자세히 보면 그 속에는 인간 삶에 대한 허무와 상실감이 있고, 자신을 낭떠러지 밑으로 내던지는 저 돌멩이처럼 어둠 속으로 내몰리는 그 어떤 공허함이 있다. 그리고 인간 삶에 대한 온기와 기대감도 있고,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는 저 돌멩이의 뒤를 따라 자신 또한 내던지는 그 어떤 다정함이 있다. 그리고 아직 종이에는 가능성이라는 여백이 남아있다.
영화 속에서 웨이먼드가 울부짖는다. 다정함을 보여달라고, 분명 너의 삶에는 불행과 같은 아픔 말고도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하는 온기가 있다고. 그리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한 장면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세탁소에서 바보 같은 미소를 띤 채로 손님 옆에서 춤을 추던 웨이먼드의 모습이. 너무도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