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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Nov 20. 2022

건축잡담 - (1)

수건걸이/나무의자/오피스텔/샤워부스/손잡이와 잠금장치

건축잡담

건축에 대한, 혹은 건축이 아닐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한 잡담은 나의 경험 속, 사소한 불편함과 미묘한 짜릿함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아, 이건 꼭 적어두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면 거리낌 없이 메모장을 켜서 그 순간을 기록해둔다. 이러한 잡담들이 차곡차곡 모인다면 내가 상상하는 공간에는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모르는 배려가 생기고 자칫하면 놓칠 수 있는 삶 속의 조그마한 미소가 배어든다.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1 수건걸이

서울에서 북스테이를 하던 날, 손을 씻고 수건걸이에 걸린 수건으로 손을 닦으려고 하자 물이 팔뚝을 타고 흘러내린다. 반팔을 입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긴팔을 입고 있었다면 분명 소매가 축축하게 젖었을 것이다. 곧바로 가방에 있던 줄자를 꺼내서 수건걸이의 높이를 측정했다. 그 높이가 거의 1,700에 다다른다. 나에게 적절한 수건걸이의 높이는 1,450~1,500 정도, 키가 큰 사람들을 고려하면 1,500~1,550가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장실의 거울 너머로 수건걸이를 보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2 나무의자

나무로 된 의자, 딱딱하지만 생각보다 등받이에 닿아있는 등과 팔걸이에 올려진 팔이 편하다. 짧고 부드럽게 솟아오른 팔걸이는 책을 읽을 때 팔이 앞으로 슬슬 흘러내리지 않게 딱 잡아준다. 곡선으로 휘어진 등받이는 포근하게 등을 감싼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의자의 각도가 살짝 높다. 허벅지를 압박하는 느낌이 과하진 않지만 다소 불편하다. 

 

3 오피스텔

그 어떤 음각 없이 빛과 색만으로 번쩍거리는 건물들이 거리에 즐비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빛과 그림자가 모두 있는 것처럼 건축 역시 그래야 한다. 특히나 서울의 곳곳에서 빠르게 지어지는 오피스텔들은 그것들이 가지는 파사드의 크기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재료를 죽 늘어뜨려놓아서 마치 하나의 거대한 성벽처럼 느껴진다. 반면, 무수히 변하는 빛과 그림자로 수 놓인 건축은 별다른 장식 없이도 건축의 몸을 가장 아름답게 치장한다. 

 

4 샤워부스

서울의 어떤 숙소에 머물렀던 날, 큼지막한 샤워부스 안에서 쾌적하게 샤워를 마쳤다. 샤워부스 문 손잡이에 수건이 걸려있었는데 당황스럽게도 문이 샤워부스 바깥으로 열린다. 수건을 가져오려면 문을 열고 나가서 몸에 남아있는 물을 세면대 앞에 뚝뚝 흘려놓게 되는 것이다. 한 가지 또 이상한 점은 샤워부스 문을 열어두면 그 뒤에 있는 화장실 문을 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소한 구조의 오류들이 사소한 불편함을 만들고 있었다. 


화장실 평면 스케치


5 손잡이와 잠금장치

회사의 화장실 문을 열고 그 밑에 있는 잠금장치를 딱 걸어 잠그고 난 후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흔한 문들에는 손잡이에 잠금장치가 같이 묶여있고 일반적으로 그것들은 편리하다고 느껴지는 편이다. 다만 손잡이와 별개로 떨어져 있는 잠금장치로 손이 이동하고 특별한 행위를 통해 그것을 걸어 잠글 때의 아주 짧은 시간의 격차, 아주 사소한 귀찮음이 잠깐 즐거워졌다. 각자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그것들이 잠깐이나마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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