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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Jun 07. 2023

해무, 바다 위의 안개

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을 보고

이 여운이 가시기 전에.

(22.07.31)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그들은 소용돌이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가고 있었나 보다. 그는 남편의 죽음에도 그 어떤 동요나 망설임을 보이지 않는 그녀의 꼿꼿함에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녀는 그녀의 곁에서 마치 뿌연 안개처럼 서성이는 그의 순수한 온정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의 모든 알리바이가 그녀를 놓아주자, 그는 어느새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있었고 드디어 잠에 들지 못하던 그 기나긴 밤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안개, 영화 속의 해준은 꼿꼿한 선인장 같은 사람이다. 메마른 눈에 집착적으로 안약을 떨어뜨리고 항상 시커먼 정장을 껴입는다. 하지만 서래를 만나고 해준은 뿌연 안개가 된다. 그녀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그리고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포근한 안개가 된다. 안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하고 그로 인해 사람을 불안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해준이라는 안개가 필요했다.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그 안갯속에서 어쩌면 그녀는 전과는 다른 자신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안갯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희미한 미소를 짓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하지만 그녀를 향한 아주 작은 의심의 씨앗이 그를 138층으로 이끌었고 그는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었다. 날이 밝아서일까, 그녀를 감싸던 그 안개가 서서히 사라져 간다. 그렇게 그는 그녀를 향한 두 눈을 감았고 그의 사랑이 끝났다고 믿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난 후, 그들은 다시 만난다. 남자는 다시 길고 긴 밤에서 허우적대고 있었고 여자는 어느새 새로운 남자를 곁에 두었다. 그녀는 안개 때문에 이포로 왔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안개가 사람들이 이포를 떠나게 하는 이유이지, 이곳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동기가 되진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이미 안개로 향해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주고받는 눈길이 왜 이리도 가슴 아프고 먹먹했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첫 번째 만남과 같은 이유로 두 남녀가 다시 만난다. 왜 그런 남자를 만났냐는 남자의 질문에 여자는 헤어질 결심을 한 것이라고 답한다. 헤어질 결심, 그에게 그녀는 커튼 뒤에 숨겨두고 계속해서 열어보는 그 미제 사건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바다가 밀려들어오는 구덩이 속에서 천천히 잠겨가는 그녀의 결심을 바라보면서 굉장히 낯선 감정이 들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감정과 처절한 절규의 이면에 존재하는 고요한 침울함이 쏟아져 들어왔다.


​산에서 시작한 사건이 그들을 만나게 했고 산에서 마주한 현실이 그들을 헤어지게 했으며, 또다시 산에서 그들은 사랑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와의 사랑을 전부 그 낭떠러지 위에 남겨두고 바다로 향했다. 그와의 그 처절한 사랑을 자신의 죽음과 가장 먼 곳에 남겨두고 싶어서일까, 그녀는 산에서 가장 먼 곳에서 그녀의 결심을 깊은 바닷속에 묻었다. 그리고 그 바다 위에서 안개가 사무친다.

​그녀의 결심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알게 모르게 빠진 사랑보다 헤어짐이라는 안갯속에서 흐릿하게 마주한 사랑이 더 애틋한 건 왜일까, 그녀의 결심 이후에 그는 과연 어떤 밤을 보내게 될까. 크고 작은 여운들이 몸속 어딘가를 계속해서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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