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박 May 14. 2023

무른 공간

AFTER-A03


국립진주박물관_김수근


나에게는 굉장히 낯선 공간이었다. 아니, 낯선 공간이라기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전시관이었다. 공간의 경계가 다소 불분명한, 그래서인지 시선이 계속해서 그 너머로 향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집과 전시관]

내가 기억하는 전시의 기능을 가진 공간들은 어느 정도 집과 같은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거실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로비나 복도공간이 있고 이를 통해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독립적인 각각의 방으로 들어가게 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거실-방-거실-방-거실의 동선 구조) 사람들은 창문조차 없는 그 단단한 방들을 돌아다니며 그것들의 반복을 경험하고 전시를 감상한다. 공간의 단단함, 그것이 국립진주박물관의 공간 유형과 아주 알맞게 대비된다.


[단단한 공간-공간의 경도]

공간의 단단함은 공간의 단순함에서 기인한다. 전시를 위한 흰 벽으로만 둘러진 공간들, 그리고 그것들의 반복은 현재의 전시관을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그것들의 크기가 아무리 자유로워져도 공간의 경도는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Open plan을 지향하는 현재의 많은 전시관은 결국 규모가 큰 방들의 집합체로 남았고 그 안에는 가벽으로 작게 나누어진, 그리고 결국 또다시 복도와 방들의 집합체로 채워졌다. (Open plan, 나는 이것이 공간의 자유도를 측정하는, 공간의 경도를 깨트리는 척도로 읽었으면 하지만 현재의 그것은 그저 단단한 방들을 입맛대로 채워놓기 위한 다소 무책임한 단어로 들린다.)


국립진주박물관 평면 스케치
Space B-C-D-G
Space C-D-G
Space C-B-A
Space G-E-F


[공간의 풍경]

국립진주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공간 속에도 풍경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풍경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은 하나의 공간 안에서 다양한 원근감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원근감은 하나의 단단한 방이 불완전해지면서 생겨난다. 공간의 모서리나 바닥, 천장의 일부가 열려있기도 하고 벽 상단이 비워지기도 하면서 그 너머의 공간이 지속적으로 시야에 노출된다. 어느 순간, 내가 서있는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내가 느꼈던 공간의 한계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게 된다. 전시품에 머물렀던 시선은 저 너머의 공간으로, 2층으로 올라가는 램프로, 저 멀리의 거대한 공간으로, 그리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빛으로 옮겨간다.


[무른 공간]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전시관들은 대부분 완전했을까, 국립진주박물관에서 경험한 공간의 불완전함이 새롭고 놀라웠다. (타이핑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그런 공간을 좋아한다. 공간의 밀도가 세밀하게 조정된, 공간이 다소 불완전하여 또 다른 공간이나 건축 이외의 요소들이 시선을 잡아끄는, 그런 공간 말이다.) 무른 공간이라는 말이 다소 어색하게 들린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그 공간은 절대 단단하지 않았다. 어딘가가 깨지고 무너져있었기에 그 너머가 보이고 빛이 새어 들어오고 공간을 유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공간이 마치 공허하게 죽죽 세워진 기둥들과 무너져 내린 벽들이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하지만 천장 없는 공간에 빛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폐허와 같아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철학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