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하면 언젠간 되겠지만,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지.
손으로 만드는 건 곧잘 하는 편이라, 주변에서 ‘우와’ 소리를 많이 들으며 자랐다.
그리기든 만들기든 악기 연주든 손으로 만들거나 그리는 건 웬만하면 다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래서
단단히 착각하며 자랐다.
사실은 만든다는 행위 뒤에 따라오는 관심과 칭찬을 더 좋았던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 길게 잘린 골판지들과 글루건을 가져가서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공예 활동을 펼쳤는데, 주변에 친구들이 모여 지켜보는 맛이 아주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기가 막힌 관종 노릇이다.
사생대회를 지나치게 좋아하고 남들 보습학원 다닐 때 십자수 공방을 다니던 이 관종 초딩은 그대로 자라 관종 중딩이 되는데…
중학생이 되어 더 큰 바다, 아니 기껏해야 조금 더 넓은 호수 같은 곳으로 진출했을 뿐인데
밑천은 금세 드러났다.
중학교 1학년 기술 가정 시간에 친구 ‘유리’가 모눈종이에 선을 그어
완벽에 가까운 미니어처 가구의 도면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좌절감을 느낀 것이다.
‘아 나는 천재는 아니구나.’
생각해보면 집요함을 갖기엔 스스로에게 관대했고,
완성도보다 완성 그 자체에 의의를 두고 80점 정도만 되면 “됐다!”를 외치고 나가 놀기 바빴으므로
집요하고, 꼼꼼하고,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친구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아니 실은 제대로 붙어본 적도 없다.
애매한 재능을 저주라 생각하며 자랐는데 그 애매한 재능과 잡지식 덕분에 탁월하고 유능한 디자이너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나와는 달리 꾸준히 한 길을 걸어, 만족의 역치가 낮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밀도 높은 작업을 하며 멋지게 성장했다.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관종 직장인은 이제 공예든 미술이든 ‘업’이 아닌 ‘취미’로 즐기는 법을 터득했고, 이젠 유능한 디자이너 친구들과 대화가 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
그보다 예술가 친구들이 무엇인가를 만들어갈 때 느끼는 한계와 어려움을 들어주고 해소시키는 것이 더 흥미롭다.
그들이 꾸준하게 세심한 예술 세계를 펼쳐 가는 동안 내가 키운 터프함과 기동력 같은 것들이 대체로, 또 의외로 쓸데가 많았다.
나는 친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다 주고, 싸게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업체 사장님과 딜을 하고, 필요하면 직접 배달해주는 일이 훨씬 더 좋았다.
라고 쓰면서도 늘 수공예, 디자인의 영역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아직도, 자주, 기웃거린다.
그러나 여전히 꾸준한 취미로 삼기엔 역량이 한참 부족하고 미싱도, 뜨개질도, 자수를 배워봐도 늘 어딘가 안쓰러운 완성작만 나온다.
의외로 꾸준하게 재미를 느끼는 것들은 따로 있었는데 ….
(계속)
본 투 비 관종이지만 막상 사람들이 쳐다보면 너무 부끄러운 이상한 성격의 나만큼이나
이상하지만,
의외로 멈추지 못하는
“관종 직장인 취미 생활”에 대해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