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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Aug 26. 2024

나의 사랑하는 부산_02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機張). 비단 짜는 베틀의 고장, 혹은 화살이나 돌을 쏘며 변방을 수비하던 지역이라고도 하지만 둘 중 무엇이든 그곳에 살고, 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가진 걸 아낌없이 퍼뜨리는 풍요의 공간임에는 분명하다. 볼거리, 즐길거리, 특산물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기장군 기장읍 대변항 인근

국내 지역 중 면적 대비 인구밀도가 가장 높고 미개발 지역이 많아 잠재적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곳인데, 최근에는 정관과 일광에 신도시가 개발되며 세련된 도시의 외형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다수의 지역들은 농어촌 마을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어 해안도로로 드라이브하다, 마을 변두리 어느 백반집에서 밥 한 술에 한적한 전경을 반찬 삼아도 꽤나 특별한 일상으로 기억될 것 같다.


기장은 부산광역시 16개 지역구 중 유일한 자치 군(郡)이지만 예부터 소속의 변수가 많았다.

아득히 먼 고대시대에는 삼한(三韓)의 변한 12국 중 '변한독로국(弁韓瀆盧國)'에 부산의 전신인 '거칠산국(居漆山國)'과 함께 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79년 신라 탈해왕의 정복 전쟁으로 거칠산국은 거칠산군(郡)이 되었고, 505년 지증왕 때 거칠산군의 속현(屬縣)으로 '갑화양곡현(甲火良谷縣)'이 편입되었는데 이곳이 지금의 기장이다. 이후 757년 거칠산군은 동래군(東萊郡)으로, 갑화양곡현은 기장현(機張縣)으로 개명되어 지금까지의 명칭으로 이어오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수레라는 뜻의 '차성(車城)'이라고도 불렸다고 하는데 현재 마을버스 업체 '차성교통', 도로명 '차성로' 등에 그 흔적이 남았다.

시간은 쭉 흘러 1895년 을미개혁 당시 지방행정구역을 부/군으로 정비하면서 기장현은 기장군이 되었고, 1914년부터는 아예 기장군 일대가 부산부 동래군에 흡수되어 '기장면'이라는 이름으로만 존속되었다. 광복 후 1963년 행정구역이 변경되며 기장을 품고 있던 동래군 일대가 부산직할시로 이관되었다가 1973년엔 양산군에 통합되었고, 산으로 분리돼 있어 관할에 어려움이 있던 것을 보완하고자 1986년 양산군 동부출장소(東部出張所)를 설치했는데,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개편되면서 경상남도 양산시 동부출장소를 흡수, 81년 만에 '기장군'으로 부활한 것이다. (박수 짝짝짝!)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다 통합되고, 주권을 빼앗겼다 되찾으며 시대는 급속하게 현대화를 향해 치닫았고 그 과정에서 기장은 이리저리 소속을 옮겨야 했다. 그럼에도 지금, 부산의 유일한 자치 군으로 건재할 수 있는 건 내 고장을 사랑하는 주민들의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부산 일광산 쌍바위 : 네이버 블로그 '목우의 방' (naver.com)

자부심의 근간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천 년을 이어온 명칭과 비교적 훌륭하게 보존된 지역 환경에서 비롯된 뿌리 깊은 역사도 한몫할 것이다.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에는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 그래서 그 햇빛을 가장 먼저 받는 '일광'이라는 작은 산이 하나 있는데, 동네 어르신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등산로가 잘 갖춰진 이곳 산 중턱에는 일명 '쌍바위'라 불리는 명소가 있다.

옛날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총각이 있었는데 그는 고을 사또댁에서 종살이하다 그 댁 외동딸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보름 뒤 시집갈 예정이었다. 총각은 일광산에 올라 산신령께 외동딸과 한 번만 만나게 해 달라 간절히 빌었고 이에 감복한 산신령이 나타나 사흘 밤낮 불경을 외우며 묵언하고 두문불출하라 했다. 그날부터 총각은 골방에서 경을 외웠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의 전개가 늘 그렇듯, 총각은 사또의 부름에 불려 가 묵언의 금기를 깼고 그 순간 총각과 외동딸은 바람에 휩싸이며 하늘로 둥둥 떠올라 각각 산꼭대기 위 돌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총각의 슬픔이 마르지 않았는지 총각 바위는 늘 축축하게 젖은 채로 있었다고 하는데 새로 부임한 사또가 사연을 전해 듣고 두 바위에 제사를 지냈더니 총각 바위가 산을 굴러 내려와 외동딸 바위가 있는 산꼭대기로 올라가 그 앞에 자리 잡아 현재에 이른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의 이름을 따 '돌실바위'라 불렀다는데 지금은 쌍바위라고만 불리고 있다.

일광산은 385m로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지만 훌륭한 동해안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기장향교를 시작으로 유유히 걷다 보면 곳곳에 다양한 꽃나무와 사시사철 변치 않는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어 계절마다 꽃놀이, 삼림욕, 자연경관 즐기기에 그만이다. 산 중턱에 있는 '백두사'라는 작은 암자 전후로 아스팔트로 닦은 정갈한 길과 잔디밭이 적절히 분포되어 있고, 일광 신도시의 '아라공원'을 끼고 내려오는 길엔 나무 데크가 안정적인 보행을 도울 테니 고즈넉한 풍경을 벗 삼아 가볍게 산책하며 쌍바위 전설을 곱씹어 보는 휴일 오후를 보내 보자.


기장하면 멸치와 미역과 다시마가 단연 유명하지만 철마 한우나 붕장어, 곰장어(짚불구이)도 빼놓을 수 없다. 품질이 워낙 우수하여 '기장○○'이라는 대명사로 불릴 만큼 타 지역 상품들과는 차원이 다른 특별함이 있어 과거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다고 하니 말 다했다.

해안가를 인접해 있기에 풍부한 해산물이 맛은 물론 가격마저 착한데 '곰장어 짚불구이'는 식자재로도, 조리법으로도 유명하며, 특히 붕장어 구이가 명품이라 자주 먹으러 갔던 기억이 있다. 새벽녘 갓 잡아 싱싱한 붕장어들을 포구 앞에서 시장마냥 줄 지어 고무 대야에 풀어놓고 판다. 생물로도 구입 가능하고 바로 앞에 즐비해 있는 초장집에서 요리해서 먹을 수도 있다.

기장군 일광읍 이천리 인근 초장집 앞
양념 장어구이
상차림

그 사람은 외아들이다. 나에게만큼은 다정하고 애교 많은 재롱둥이였지만 집에서는 여느 경상도 남자들처럼 무뚝뚝한 아들이었던 것 같다. 대화도 거의 없고 농담도 안 한다고 했다. 하지만 서로를 아낀다는 표현으로 함께 밥을 먹는다고.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배가 고파도 가족들이 모두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식사하곤 했다. 주말에도 주기적으로 투박한 분위기의 맛집을 찾아 가족들과 단란한 식사를 하고 나면 며칠 뒤 나를 따로 데려갔었다.

바쁜 회사 일로 비실거리던 어느 초여름, 몸보신시켜 준다고 한창 자주 데려갔던 기장의 저 초장집은 싱싱한 붕장어를 잡아다 특제소스를 덧발라 구워준다. 적당히 매콤해서 담백한 붕장어 고유의 맛을 지켜주었다. 오리지널로 소스 없이 먹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굽는 건지 비린내가 하나도 안 났던 기억...


배불리 먹고 나면 인근 이동항에서부터 일광 해수욕장까지 바다 내음에 취해 걸었다. 비가 오는 날에도, 햇볕 따사로운 날, 구름 낀 날마저도 언제나 함께여서 좋았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에 시시덕거리며 노래도 흥얼거리고, 싸구려 커피를 호로록거려도 행복했던 그 모든 것들이 영원할 거라 믿었다.

함께 4년을 보내며 모든 순간을 동영상으로 찍어놓고 싶을 만큼 행복했다. 그래서인지 안 좋아하던 것도 좋아하게 되었는데, 비 오는 날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이 그중 하나다. 부산도 비가 꽤나 많이 오는 지역이다. 바다의 습기가 모여 안개를 만들고 안개는 구름으로, 구름은 곧 비를 뿌린다. 구멍 뚫린 듯 쏟아내는 폭우도, 흩날리는 미스트 비(?)도 다 사랑하게 만들어 준 그 사람이 아직도 참 고맙다.

왜 당시에는 모를까. 왜 꼭 지나고 나면 안 보이던 게 보일까. 당연시 여겼던 모든 행동들이 사랑에서 비롯된 배려였는데, 나는 왜 더 주지 않는다고, 사랑을 더 표현해주지 않아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만 생각했을까.

만약 그때 그걸 알았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여전히 건재하게 사랑하며 무탈하게 지내고 있을까?

이런 생각조차 무색할 만큼 우리는 완전히 끝이 났다. 다음번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자위하기엔 지나간 사랑이 아직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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