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글 가게에서의 첫날
프런트에서 카운터 보는 일을 했다. 주문을 받고, 포스기를 어떻게 다루는지 배웠는데 뭐가 너무 많았다. 아니, 대체적으로 메뉴는 알겠는데 뭐가 어느 버튼에 있는지를 잘 모르다 보니 주문을 받는 데에 시간이 걸렸고, 고객들이 모두 미국인인 가게이다 보니 주문받을 때 잘 못 듣기도 했다. 오피스에 있는 사람들처럼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 아니라, 뭉개지는 발음도 있고 너무 조용히 말하기도 하고... 가지각색이어서 좀 힘들었다.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잘 모르다 보니 헤매면서 찾다가 손님에게 여러 번 오더를 물어야 할 때도 있었는데, 그 손님도 나중에는 짜증이 났는지 한숨을 쉬며 오더를 다시 말해주고 못 찾겠으면 그냥 캔슬해 달라고 했다. 나는 기어이 도움을 받아 그 주문까지 넣었다. 전화로 받는 주문은 엄두도 못 냈다. 아직 메뉴도 잘 모르는데 덥석 받았다가 오더를 잘못 받을 수도 있으니까. 바쁜 시간대에는 내가 더미꾸러미가 되지 않도록 간간히 테이블들을 청소하고 정리했고, 간단한 음료를 만드는 등의 일을 했다. 나도 나서서 거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첫 출근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니까. 오너분들은 나이스 해 보였다. 다음 주 아르바이트 할 때까지 메뉴를 모두 외워가야지. 포스기 시스템도 내가 접속해서 외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침과 브런치 장사만 하는 베이글 가게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려니 힘들긴 하더라... 원래대로라면 금요일 밤부터 한숨 돌리고 남편이랑 마음 편히 보내는 저녁과 아침이었을 텐데. 그래도 아침 일찍 나와서 컴컴할 때 타는 톨웨이는 기분이 좋더라 하하. 그냥 그 어두컴컴함이 주는 분위기가 굉장히 안락했달까. 온열 시트를 켜고, 재즈를 들으면서 — 남편은 내가 평소에 오피스에 나갈 때에도 재즈나 클래식을 들으면서 출퇴근한다는 걸 알고는, 누가 재즈를 들으면서 운전하냐고 그랜마 같다고 했다 하하 — 운전하는데 편안하더라. 여하튼, 못할 일은 아니었다.
나는 차분하고 한편으론 샤이한 성격을 갖고 있는데, 알바를 하면서 이것저것 소프트 스킬도 배우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샤이한 성격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알바를 시작한 이유도 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그런 게 많이 없어졌었는데 (다양한 알바를 경험해 봤으니 당연하다), 미국에선 영어가 내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위축이 되고, 말수가 확연히 줄고, 자신감이 줄고... 모든 일에 소극적이게 되었다. 남편도 항상 내가 자신이 없어 보인다고, 평소에 자신감 있게 행동을 하라고 했다. 사실 회사에서 나도 내 의견을 당당히 피력하고 싶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싶고, 뭔가를 원할 때 당당히 이야기하고 싶은데 말을 걸맞게 잘하질 못해서 그게 잘 안되고 답답하니까, 알바를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한 것도 있다. 미국인 코워커는 저렇게 하는데, 저렇게 하질 않는 나 자신이 내가 답답하다. 나도 squeaky wheel이 되고 싶다.
알바를 마친 후에는, 남편을 줄 베이글 샌드위치를 사려고 했는데 사장님이 너그러이 공짜로 주셨다. 내가 먹고 싶은 연어 샌드위치로 받았는데, 나는 이미 일하면서 베이글 샌드위치를 하나 클리어 했으니 쿼터정도만 내 몫으로 먹고 (먹고 싶었던 맛이었는데 맛봤으니 됐다) 나머지는 다 남편을 주었다. 그날인데 무리해서 그런가, 컨디션이 좀 난조 하길래 낮잠 좀 편히 자려고 했는데, 그것도 자꾸 왔다 갔다 하는 고양이와 계속 참견하러 오는 남편 때문에 실패.
점점 더 내 자신이 좋게 변하기를 바라며 후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