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또한 알 테다. 고통이 앞장서더니, 억척스레 나를 잡아 늘려놓고는 이것 또한 성장이라고 주장하는 성장 또한 존재하는 것을. 최소한의 방어마저 하지 못할 만치 함부로 고통이 침입하여 당신을 목줄 채우더니, 그렇게 순식간에 단단한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나동그라진 당신에게 말한다. 이 또한 배움이라고. 이로써 네가 성장한 것이라며 말해온다. 난 그것에 묻고 싶다. 목줄 채운 성장은 성장으로 분류되는가. 우리는 정말 이것을 성장이라 불러야 하는가. 이 고통까지 성장통으로 분류해야 하는가.
아니다. 난 이것을 성장이라고 분류하고 싶지 않다. 분명 이 우악스러운 고통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은 존재할 터다. 그러나 그 배움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나. 이 뇌리박힐 고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배움이었나. 단시간에 쐐기 박히듯 내려쳐진 배움이 아닌, 긴 너울을 가지고 스며드는 배움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인가. 이것은 우리에게 감히 너무도 무례한 고통이다. 도를 넘어선 성장통은 더 이상 성장통이라 불리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저 아픔이 된다. 이 아픔을 애써 성장통이었다고 포장하고 싶지 않다. 당신과 나, 우리의 아픔이 필수적이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어떤 성장보다는 어떠한 고통의 부재가 더 나은 것이 된다.
나는 우리가, 당신이, 아픈 순간이 더 없기를 바란다. 배움이라는 겉 포장으로, 성장통이라는 손쉬운 이름표를 붙여가며 당신의 아픔을 격하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이 더 아프지 않기를, 급변하는 성장은 가지지 않기를, 만일 아픔을 지니게 되더라도 덜 아플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있지. 이런 것도 성장통이라 불러도 되는 걸까.
이렇게 둔탁한 아픔도 성장통이 맞는 걸까.
이토록 아프게 도달할 성장이었다면
난 차라리 성장하지 않아도 좋았어.”
“이 고통은 성장에 비견했을 때 너무도 과분해.”
“아프다.
내가 너무 과분하게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