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챗봇: 화장실의 현자

안심이 필요했던 너에게

by 밤돌

"아빠, 똥 마려."


백화점 한복판에서 아들이 급발진했다. 나는 숨도 안 쉬고 아들을 번쩍 안아 들고, 화장실로 전력질주했다.


'제발, 빈자리야…! 제발!'


다행히 화장실은 깨끗하고, 빈칸도 있었다. 아들을 앉히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잠시 평화를 찾나 했는데, 아들이 고개를 들었다.


"아빠, 똥이 힘이 셀까? 변기가 힘이 셀까?"


이건 또 무슨 말이람. '하늘이 왜 파랄까'는 연습해 봤다. 하지만 변기와 변의 싸움이라니. 눈앞이 캄캄했다. 정당의 대변인은 이런 기분일까.


“음... 당연히 변기가 더 세지.”


일단 지르고 본다. 하지만 아이는 아빠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놓치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 핸드폰을 가리켰다.


“아니야, 인터넷에 찾아봐! 줘봐~!”


글도 못 읽는 녀석이 스마트폰을 달라니. 급하긴 급했나 보다. 인터넷에 그런 게 나올 리가 없잖아... 아, 아니다. 인공지능은 가능할지도. 나는 얼른 인공지능 챗봇을 찾아서 아이의 질문을 입력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 변기는 중력과 물의 양을 이용하여 상당한 힘으로... 반면, 똥은 그 자체로는 특별한 추진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변기가 훨씬 더 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순식간에 대답을 내놨다. 놀라웠다. 엉뚱한 질문에도 유명 로펌 변호사처럼 논리 정연했다. 나는 다급히 재생 버튼을 누르고 아들의 귀에 들려주었다. 아이는 핸드폰 쪽으로 머리를 기울이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음, 그렇구나."


이해는 한 걸까? 아무튼 아들은 다시 조용히 집중했다. 나도 편히 자리를 잡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다시 아들이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살짝 삐딱하게.


“거인이 와서 똥을 백백으로 싸면 어떨까? 그래도 변기가 이겨?”
(‘백백’은 아이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 엄청 많다는 뜻이다.)


이번엔 상상의 인물이 합세했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AI에게 바턴을 넘겼다.


▷... 거인의 똥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변기의 물 내려가는 힘이 여전히 훨씬 더 셀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호라. AI는 문맥까지 파악했다. '여전히 훨씬 더'라고 강조까지 해준다. 아들에게 대답을 들려주었다. 아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마치고, 아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엄마에게 달려갔다.


돌이켜보면 아들이 변기와 변의 싸움을 궁금해 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아들은 평소와 다르게 어린이용 시트가 없는 어른 칸에 앉게 되었다. 잘 앉아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좀 겁이 났던 것 같다. 게다가 조용한 화장실에 아들의 작은 몸에서 떨어진 소리가 유난히 울려 퍼졌다. 아들이 물은 건, 변과 변기의 대결이 아니라 자기가 무사할 수 있냐는 거였다.


그래서 아빠의 자신 없는 대답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고, 다급하게 "인터넷!"을 외쳤던 것이다. 좀 더 시간이 있고,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면 나도 대답을 잘해줄 수 있었을까. 아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버벅거렸을 것 같다.


아들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누군가 조용히 확신 있는 목소리로 들려주는 "괜찮다"였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 마음을 달래준 것은 아빠가 아니라 AI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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