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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글 Jan 23. 2020

나를 견디게 해준 말들

오늘도 잠 못드는 20대에게

올해로 스물아홉. 20대의 끝에 접어들었다.



작은 출판사를 거쳐 지금은 서점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실은 다큐멘터리 PD가 되고 싶었다. 경외심을 심어주는 자연이나,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품게 하는 프로그램도, 부조리한 일을 고발하는 르포도 아니고, 그냥 보통 사람들의 얘기가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별 거 아닌데 따뜻하고, 눈물 나고, 그런 거. 헌데 대학 시절 경험해보니 방송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엄청난 체력과 지구력, 인내력, 센스, 외향적이고 강단 있는 성격,... 이밖에도 많은 것들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뭐가 하고 싶은지  모르는 채로 대부분의 20대를 보냈다. 남들 간다는 어학연수도 다녀와보고, 말도 안 되는 연애도, 해뜨기 전 시작하는 알바도 해보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그냥 '보냈다'는 표현보다는 '흘려보냈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지도. 남들은 목표를 잡고 달리던 시기에 쉽게 꿈을 접었다는 낙오감, 그럼에도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열등감으로 점철된 시간들이었다.



취업준비생 시절에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직무에 도전했었다. 경영을 전공하지 않은 문과생이 갈 수 있는 마케팅, 영업으로. 고배도 참 많이 마셨다. 카페에서 자소서를 쓰다 불합격 통지를 받고 눈물을 줄줄 흘린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다 경쟁을 싫어하고 차분한 성격, 꼼꼼한 편인 내게 ‘책’이라는 선택지가 눈앞에 놓였다.



글밥을 먹고 산지 3년을 꼭 채웠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일에 대해 확신을 내릴 수 있는가', '지금 하는 일이 내가 잘하는 일인가', '지금 내 삶은 과연 행복한 삶인가', '미래를 그릴 수 있는가’하는 물음들을 스스로 참 많이도 던져 왔다. (사실은 지금도 던진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내가 20대 후반에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작년 가을쯤에는 일로 한 작가님을 만났다. 40대에 에세이스트로, 꽤 인지도 있는 작가로 자리 잡은 그에게서 솔직한 얘기를 들었다. 20대 때로 돌아가고 싶냐 묻는다면, 절대 돌아가지 않고 싶다고. 내가 어떤 사람이야, 라는 걸 보여주어야 하는 20대, 그럼에도 드러낼 것 없는 (*이 부분의 표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20대의 시절이 꽤나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이 든 지금이 좋다고, 그러니 여러분이 괴로운 건 당연한 거라고 했다.



바로 엊저녁에 있었던 인스타 라이브에서 기타리스트 적재는 이런 얘기를 했다. 십 년 전의 모습을 묻는 질문에, 스물둘의 적재는 예민하고 열등감 많은 사람이었다고, 지금은 본인이 어떤 부분을 잘하고, 어떤 부분은 그렇지 않은지 아니까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다고 했다. 그러니 20대에는 뭐든 겪어보라고.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지금 적재에게서 묻어 나오는 그 여유롭고 따뜻한 분위기 뒤에는 그런 고민의 시간들이 있었구나 싶다. 이 얘기를 듣고 보니 더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작가님의 이야기는 나와 비슷한 고민으로 괴로워하는 친구를 만나면 "이런 분이 이런 말을 해주셨어"라며 건넨다. 상처에 마데카솔 바르듯이  말이 기능하기를 바라면서. 재미난 건, 상대방에게 이 얘기를 꺼낼 때마다 나 역시 위로를 받는다는 점이다. 이 작가님을 만난 이후론 힘들 때 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됐다. 그렇게 지내오던 오늘, 적재 인스타 라이브를 보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고, 이제는 이 글을 꼭 써야겠다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말과 글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렸을 때 꿈꾸던 직업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것을 찾아 어떤 길이든 가다 보니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내 앞에 찾아왔다. 20대의 대부분을 혼란스러워하며 보내지 않았다면  일을 하지 않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여기저기 흔들리는 마음도, '  못났다' 생각도, 아주아주 정상이고 당연한 일이다. 내 생각보다 20대가 멋지거나 화려하지 않다는 것도 그런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고.



오늘 밤은 나를 견디게 해 준, 앞으로를 견디게 할 고마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20대, 잠 못 드는 누군가 이 글을 발견한다면 상처에 톡톡, 바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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