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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글 Mar 19. 2020

내게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모두 다른 생김새, 목소리, 성격을 갖고 태어난다지만, 나에겐 남들과 달리 한 가지 더 다른 점이 있다. 내게는 팔다리 중 어떤 신체부위에 흰 점이 크게 있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몸 곳곳에 흰 우유를 흘린 것처럼 군데군데 흰점을 지니고 태어났다. (점이라곤 하지만, 콕 찍은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우유를 흘린 것 같이 생겼다.) 


몸이 기능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치만 이 흰 점이라는 놈은 학교에 다니던 시절 내게 무척 큰 스트레스를 줬다. 여름만 되면 그게 도드라져 보였는데, 어느 정도였나면, 반팔, 반바지를 입어야 하는 여름이 싫고 하복이 싫어서 교복을 입지 않겠다고 교장실로 찾아갈 생각도 했을 정도였다. 처음으로 하복을 입고 등교하던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그 콤플렉스를 어떻게든 가리느라 하루 종일 뻐근했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학교에서도, 버스에서도 내내 나는 불편하게 있었다. 그러잖아도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한 뼘 정도 크기의 콤플렉스 때문에 몇 발자국 뒤로 숨어 지냈다. 


여름만 되면 엉엉 울었다. 드러내기 싫어서.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내 손을 붙잡고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엘 찾아갔다. 요리조리 검사해봤지만 백색증 같은 건 아니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다른 피부색과 비슷하게 입히는 문신을 하는 방법이 있다고 그 당시 유일한 치료 방법(?)도 슬쩍 건넸다. 의사 선생님은 자라나면서 부위가 늘어날 테니 문신을 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별다른 소득 없이 없이 그대로 집에 돌아왔다. 


그 후로도 가끔씩 친구들은 물었다. “어, 이거 뭐야? 화상이야?” “아니,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 “우와, 신기하다.” 이런 식의 대화들. 별 악의 없이 물었을 테지만 그 물음을 듣는 일이 무서웠던 것 같다. 남과 다르다는 걸 들추는 게 왜 그렇게 힘들었던지.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몸에도 마음에도 선명했던 콤플렉스는 다행히 해를 거듭할수록 옅어졌다. 매년 여름 햇볕에 조금씩 그을리면서 (일부러 잘 타라고 햇볕을 쬐주기도 했었다) 흰 우유 같았던 그 콤플렉스는 지금은 두유 정도로 희미해졌고, 자연스레 의식도 덜 하게 됐다. 


그러다 작년 여름쯤이었나. 어느 순간 나는 이 흰 점이 독특한 표식 같이 느껴졌다. 이 세상에 나만 갖고 있는 재밌는 표식. 사실 우유 흘린 것 같다고 했지만 꽤 넓은 부위다. (온몸이 대저택 크기의 집이라고 한다면, 흰 점 녀석은 원룸이나 고시원 정도 크기라고 보면 된다.) 암튼, 어느 날은 이게 내 몸에 둥둥 떠있는 구름같이 보였다. (다른 곳과의 경계도 구름처럼 몽글몽글. 언제 봐도 신기하다.) 


Photo by aziz ayad on Unsplash


문득 여기에 타투를 새기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게 구름이라면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 별, 달, 새, 뭐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을 새겨봐도 괜찮겠다 싶었다. 단지 '예쁘고 보기 좋을 것 같아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이건 이제 내 콤플렉스가 아니야'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스스로에게도.


내년이면 서른이고 10년 뒤에는 마흔인데 해도 괜찮겠어? 할머니 되어서도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나는 나에게 몇 번이고 물었다. 아직 타투를 새기겠다는 확신은 없지만, 언젠가 나에게 생길지 모를 아들딸이 “엄마, 이거 뭐야?” 하면 “어, 이거는~ ” 웃으면서 젊은 날의 콤플렉스 극복기를 들려줘도 괜찮겠다 싶다. 


타투 많이 아프다던데, 어느 정도일까. 어린 시절부터 지녀왔던 작고 그늘진 마음들을 싹 잊어낼 정도로만 아프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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