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엄마의 방학준비
다음 주 방학이야 엄마.
어...
내일이 방학이야.
어...
아들이 몇 번을 예고해 줬지만,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온몸이 천근만근. 손으로 빨래하고 제대로 짜지 않은 옷처럼 축축 늘어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형제도 없이, 오로지 혼자 방학을 보내야 하는 아들이기에, 아들의 방학이 달갑지 않았다. 무엇보다 삼시 세끼가 걱정이었다.
방학 첫날을 우리의 배민과 짜파게티 컵라면으로 때우게 한 미안함에 아들 얼굴도 못 볼 지경이 되어서야 나는 힘을 내었다. 3~4일 치 삼시세끼 먹을 것을 만들어 두기로 했다. 새벽 배송을 시키고, 퇴근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앞치마를 둘렀다.
한 가지 고마운 것은, 어차피 새로운 메뉴를 해도 안 먹는 아들이다. 엄마가 없는 상황에서 안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보라고 해 봤자, 손도 안 댈게 뻔했다. 그래서?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만 하기로 했다. 아들의 편식이 이럴 땐 고맙다. 하하.
엄마 없을 때 혼자 후루룩 말아먹기 좋은 된장국을 한가득 끓이고, 짜장밥과 카레밥 등 간단히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기만 하는 메뉴들로 준비했다.
제 방에서 공부하는 척(--;;) 하던 아들이 카레 냄새를 맡고 주방으로 달려왔다.
오우~ 맛있는 향기~ 좋은데요?
아들의 반응에 양심이 따끔거린다. 미안함 때문인지 가스 불 때문인지 얼굴이 달아오른다. 가끔은 스파게티나 짜파게티를 별미로 먹는 게 좋았겠지만, 늘 맛없는 국이라도 엄마 음식이 최고라 말하는 아이에게는 말 안 해도 엄마 밥이, 엄마의 사랑이 더 맛있게 느껴지나 보다.
밥을 지어 그릇에 소분하고 차곡차곡 쌓았다. 국과 카레등도 반찬통에 담았다. 아들이 조기사춘기 진단을 받은 직후, 집에서 사용하던 플라스틱 제품은 거의 다 버려버렸기 때문에 유리로 된 반찬통뿐이었다. 국이 담긴 유리 반찬통을 몇 개 쌓아 집어 들자 묵직했다. 하지만 아들에게 배달 음식을 시켜줘서 무거웠던 엄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냉장고에 층층이 반찬통을 쌓아놓고, 후식으로 먹을 과일까지 아침, 점심, 저녁 다른 과일로 깎아 넣어 두었다. 아들을 불러 냉장고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시켜 주고, 각각 메뉴별로 전자레인지에 몇 분 돌려 먹으면 좋은지 알려주었다.
아들과 앉아 하루 일과와 일주일 학원 스케줄을 정리하고, 필요한 문제집 주문도 완료했다. 아~ 폭풍같이 해치웠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제대로 다리 뻗고 앉을 수 있었다.
직장인 엄마는 아이가 방학하는 순간, 혼란을 겪는다. 아이 아침상이라도 차려줄라치면 보통보다 적어도 삼십 분 이상은 일찍 기상해야 하고, 아이가 일어났는지 회사에 출근해서 모기 소리로 조용히 전화를 한다던가 학원에는 잘 가고 있는지 위치 추적 앱을 수시로 확인하곤 한다. (아들아 미안...) 주변에 친인척도 없어서, 종일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가 외롭다고 말이라도 한다면 가슴이 찡하고 온갖 걱정이 휘몰아치기 시작하지. 무엇보다 아이의 끼니를 챙겨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직장인 엄마’를 속상하게 하는 일인 것 같다.
이렇게 준비를 해놓고 가득 채워진 냉장고를 보고 있자니, 그래도 며칠은 걱정 없이 아이의 끼니를 챙길 수 있다는 생각에 잠깐의 고생이 위로가 되었다.
직장인 엄마의 방학 준비는 이렇게 끝냈다. 자, 그러니 아들? 너도 방학을 부디 알차게 보내주길 바란다! 여름방학, 직장인 엄마도 혼자 있는 아이들도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