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삶과, 죽음에 관한 단상
매주 목요일, 동네 중심부에 위치한 카페에서 구역모임이 있다. 올리브영을 오른쪽에 두고, 왼쪽 메가 커피를 지나 꺾어진 골목으로 조금 걷다 보면, 3~4층짜리 벽돌로 된 작은 교회가 보이고, 교회건물 높이만큼의 빌라가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고깃집을 지나고, 횟집을 지나면 모퉁이에 카페가 있다.
그러니까 거의 매주 한 번은 이 길을 오가게 된다. 그런데, 교회와 빌라 사이 주차 공간에는 늘 폐지와 고물들로 가득 차있고, 기력이 쇠한 노인 한분이 거기서 폐지를 정리 중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꽤나 유명하신 폐지 줍는 노인.
내가 이 동네에 이사 온 지도 벌써 7~8년이 되었으니, 그때도 폐지를 줍던 그 노인은 해가 지나고 몸이 더 꼬부랑해져도 온 동네를 돌며 폐지를 주우러 다녔다.
언젠가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처음 동네에 이사 와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우울한 마음 달래려 근처 생태공원으로 산책을 가려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하필 눈이 펑펑 쏟아지길래 따뜻한 커피를 사들고 걷게 됐다.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헉헉.
곧 죽을 것 같은 숨소리에 돌아보니, 폐지를 손수레에 잔뜩 실은 할아버지가 도로 이차선을 당당히 장악한 채 나아오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에 도와 드려야 하나 싶다가, 나름의 호흡에 맞춰 낑낑 끌고 있는 수레인데 자칫 폐가 되지는 않을까 고민하다 그냥은 도저히 지나칠 수 없어서 한 손엔 커피를 든 채, 남은 한 손으로 손수레를 서서히, 힘껏 밀어드렸다. 때마침 살짝 오르막길을 만났을 때였다.
몇 분 걸리지 않는 길인데, 십 분은 족히 걸렸다. 고물상 앞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그러든가 말든가 제 갈길을 가셨지만, 나름 전력을 다한 내 몸은 땀범벅이 돼 있었고 그날 나는 허리를 잃었다. 하하.
삐끗한 허리가 며칠을 두고두고 날 힘들게 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그 할아버지가 건물주라는 소리를 듣고, 아픈 허리가 괜히 억울했더랬지.
이후에도 할아버지는 더운 여름엔 난닝구 바람으로 바짝 마른 몸에 잔근육을 보여주며 여전히 끙끙 거리는 신음소리와 함께 날이면 날마다 폐지를 주우셨고, 겨울에도 경량 점퍼에 의지한 채 한가득씩 폐지를 주워 담으셨다. 할아버지가 건물주라는 소리를 듣고 한 번은 찬찬히 그를 훑어보게 됐는데, 신발이 꽤 좋은 브랜드더라.
그 교회옆, 빌라.
고물과 폐지로 잔뜩 쌓인 주차장. 폐지를 정리하고 있는 건지, 폐지에 파묻힌 건지 구분이 안될 만큼 어질러진 그 주차장 딸린 빌라가, 바로 폐지 노인의 건물이었던 것이다.
여느 목요일 저녁처럼, 올리브영을 지나, 메가 커피를 지나 꺾어진 골목으로, 벽돌 교회를 지나 고깃집을 지나 횟집을 지나고 커피숍에 도착한 어느 날이었다.
어라?
뭔가 이상했다.
교회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거꾸로 그 길을 지나가는데... 주차장이 깨끗했다.
첫날은 '깨끗해졌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다음 주 다시 그 길을 지나면서 문득, 할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동네 소식통 언니에게 물어보니, 몇 주 전, 갑자기 그가 세상을 떠났단다. 폐지 수거 노인의 마지막은 다름 아닌 고물상 앞이었다.
누구는 폐지 노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고, 누구는 사고사였다고 했지만, 소식통은 고갤 절레절레 흔들며 이것이 정확한 소식이라고 전했다.
그날도 잔뜩 폐지를 주워서 고물상으로 왔는데, 고물상 앞에서 픽! 쓰러져서 그 길로 가셨대
친정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삶과 죽음에 대해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폐지를 줍던 그 노인은, 왜 그렇게 악착같이 매일을 그 고생을 하며 살았을까. 마지막까지 숨을 헉헉 거리며 폐지를 손수레에 잔뜩 싣고 고물상으로 가던 길에 그는, 그 고생이 그렇게 끝이 날줄 알았을까.
어쩜 밥 먹는 것보다 더 자주 드나들었을 고물상 앞에서 쓰러질 때, 그 고단함이 이제 끝난다는 생각에 좋았을까, 이 세상에 더 머물지 못함이 아쉬웠을까.
어느 날 문득, 깨끗해진 폐지 노인의 집 앞을 지나가다가
깨끗해진 그 집 앞이 영~ 어색해 괜히 서운했다.
터벅터벅 시컴해진 밤길을 걷다가, 생각했다.
누구라도, 삶의 끝은 준비할 수 있도록, 나의 삶과, 그 삶을 함께했던 이와 작별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