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기간, 아들의 삼시 세끼에 관하여...
긴긴 겨울 방학이 시작된 지 오래, 이제 2주 후면 개학이다. 그간 아들과 나, 우리의 방학은 진화를 거듭했다. 다른 게 아닌 삼시세끼 이야기다.
맞벌이 가정의 엄마들은 매일같이 아이의 삼시세끼 걱정에 한숨이 나온다. 함께 일하는 옆 직원도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그날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고 배달을 시켜주는데, 간혹 배달이 잘못되거나 아이가 원하는 게 누락이 되면 업무 중 작은 목소리로 그것들을 처리하는데, 살짝 애처롭기까지 하다.
우리 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방학 때는 일주일치 음식을 한꺼번에 만들어놓고 나오곤 했었다.
편하긴 했지만, 3~4일쯤 지나면 아이가 비슷한 음식에 질려 다른 걸 먹고 싶어도 했고, 음식이 상하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번 방학은, 사실 그런 핑계보다는 조금 귀찮아졌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이는 한 살을 더 먹었고, 라면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올레~! 아들이 라면을 먹는다는 것에 이렇게 기뻐할 일인가. 그 덕에 아들의 하루 세끼를 비교적 간단하게 준비할 수 있게 됐다. 매일의 식사 속에 한 끼 정도는 라면으로 때워도 괜찮을 거라고, '엄마'인 나를 스스로 가스라이팅 하면서...
이번 방학 초기 차려 준 아침밥상.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시간을 적어놓으면 아들이 알아서 데워 먹었다.
문득, 전자레인지 사용에 관한 불안감 (가령 전자파 걱정이나...)이 죄책감과 합쳐지면,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준비하곤 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떡국을 전날 미리 담가 불려놓고, 간이 짭짤하게 된 육수를 만들어 놓는다. 아침에 재료들을 꺼내놓고 출근을 하면, 늦잠 자고 일어난 아들이 레시피 순서대로 넣고 끓여서 먹는다.
중학생 아들이 떡국을 끓여 먹는다고 얘길 하면 주변 엄마들이 오~~~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흠흠. 이게 다~ 진화한 거라고요~~~
고구마 감자, 달걀, 사과 등으로 아침을 간편하게 준비해 놓을 때도 있다. 이런 날은 점심을 꼭 밥으로 먹을 수 있도록 한다.
솔직히 아들에게 미안하지만, 난생처음 아들 밥 준비로 마트에 가서 '3분 카레'도 몇 개 사 두었다.
이렇게 점심에 밥을 먹었으면 하는 날에, 미리 국이나 먹을거리 준비가 안되었을 땐, 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3분 카레를 데워 먹도록 이야기하는데, 그런 때가 엄마로서는 가장 미안하다.
감사한 건, 라면이나 우동을 끓여 먹게 해 주는 것에 대해 아들이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엄마 음식 맛없었던 거냐~ ㅎㅎ) 한 번씩 먹으라는 음식 말고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먹어도 되겠냐고 전화가 오기도 한다. 직장인 엄마로 그런 전화를 받을 땐, 괜히 눈치가 보여 얼른 오케이를 외치고 만다.
저녁에 국이나 아침에 먹을 달걀찜을 미리 해 놓는 날이면, 이제 이렇게 간편하게 메모 한 장을 남기면 된다.
그러면 아들은 알아서 국을 뜨고, 밥을 데워서 차려 먹는다. (이런 메모를 남겨두지 않으면, 매 끼 뭐 먹냐고 전화가 온다. ㅎㅎ)
퇴근 후 설거지거리는 여전히 넘치지만, 그래도 매 끼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걱정을 조금 덜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니라 아이가 자랐기 때문이고, 혼자 먹는 밥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혼밥의 외로운 시간을, 엄마가 준비한 따뜻한 밥 한 끼로 해결해 주면 좋으련만, 피곤을 이기지 못해 아들에게 반조리식품을 먹인 날에는 괜히 미안해서 영양제 한 알을 저녁 간식과 함께 내어주게 되더라.
잘 먹이질 못해서 아들의 키가 자라지 않는 것 같고, 살이 찌지 않는 것 같고. 골골하는 것 같은... '엄마'로서 괜한 죄책감이 드는 것까지 어쩔 순 없지만, 그래도 아들과 나, 우리의 방학 삼시 세 끼는 이렇게 진화하였다는 다소 웃픈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