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좋겠다

우리 아빠도 한 아이의 할아버지였는데...

by 돌콩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시작된 일상.


아들이 학원엘 가고 볼일이 있어 나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일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고, 내가 내리는 찰나 한 가족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두 명의 장성한 손녀들이었다.


순간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지 할머니가 키득 거리기 시작했고,

한 손녀가 왜 그러냐는 제스처로 물었다.


내가 내리고 뒷문이 닫히려는 찰나,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며 문이 닫혔다.


아니~ 너희 할아버지가.....


순간, 그 단어 한마디가 부러웠다.

너희들은 좋겠다. 할아버지가 건강히 살아 계셔서.




우리 아빠도, 우리 아이에겐 너무나도 상냥하고 따뜻한 할아버지였다.

아픈 아이를 치료하고 있는 나를 문 너머에 서서 지켜보며, 말도 건네지 못한 채 눈물을 글썽이던 정 많은 아버지였고, 울다 목이 쉬어버린 아이를 업어주며 어떻게든 웃겨 주려 하시던 사랑많은 할아버지셨다.


명절날 손자 손녀가 오면, 할아버지 등에 서로 업히고 안기려 할 만큼, 아빠는 아이들에게 인기 최고의 할아버지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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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좋아하는 쥐포 튀김을 손수 만드시며 딸, 사위, 아이들을 기다리던 분... 고스톱 대신 아이들과 함께 코코너츠 보드게임을 하며 즐거워하셨고, 멀리 서울에서 내려오는 우리가 차가 막혀 새벽녘에 도착을 해도, 언제부터 나와 기다리셨는지 집 앞에는 항상 아빠가 서성이고 계셨더랬다.

아빠 이야길 할 때면 빠짐없이 나오는 이야기다. 아빠도 참... 우리가 언제 도착할 줄 알고...




올 설에는 뒷 날이 짧아서 시댁 대신 친정엘 먼저 간 관계로, 아빠 납골당에도 명절 전에 갈 수밖에 없었다.


이번 꽃은 분홍으로 정했다. 이제 곧 봄일 텐데, 꽃피는 춘삼월은 지나야 아빠를 뵈러 올 것 같아서... 화사한 꽃으로 선물하고 싶었다.

KakaoTalk_20260219_212750225_01.jpg 매번 아빠 집 앞 꽃다발을 만들어 간다


올해는 유독, 아빠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남동생일로 언니, 형부, 친정 가족 모두가 고생하고 있는 상황이라 '아빠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모두의 마음속에 가득했을 거다.


하이고, 아빠. 이게 뭐야. 아빠가 없으니까... 우리 다 너무 힘들어...


납골당에서 보니 세상에나 아빠가 2021년에 돌아가셨더라.

방금 돌아가신 것처럼, 아빠와의 마지막 대화가 눈앞에 선선한데 말이다. 그동안 각자 그 아픔들을 이기며 살아내느라 애 많이 썼다. 집안의 버팀목이었던 아빠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우리 모두에게 충격이었고, 준비되지 못한 이별의 대가는 가혹했다.


KakaoTalk_20260219_212750225_02.jpg 아빠와 인사 나누는 엄마의 뒷모습은 언제나 애처롭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5년 째지만, 단 하루도 아빠 생각에 울지 않은 날이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화기 애애한 할아버지 할머니 가족 덕분에, 명절 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진해졌다.

집으로 돌아와, 아빠가 돌아가시기 직전 엄마께 당부했던... 돌아가신 그해 첫 명절 받았던, 아빠의 마지막 세뱃돈을 꺼내어 본다.


KakaoTalk_20260219_212750225.jpg 아빠의 마지막 세뱃돈, 그리고 엄마가 주시는 세뱃돈도 작년부터 봉투째 모으고 있다


따뜻하다. 아빠의 마음이 담긴 것 같아서.

작년부터 모으기 시작한 엄마가 주신 세뱃돈과, 봉투에 적힌 손편지도 너무 소중하다.

아빠께 하지 못한 효도를 엄마 살아생전에 많이 해야 할 텐데, 참 쉽지가 않다...




부모님의 기도와 사랑 덕분에 내가 이만큼 자라 어른이 되었다.

어른의 무게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세상과 또 가족과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게, 참 슬픈 일임을... 그 슬픔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또 살아내야 한다는 게 참 무거운 일임을...


일상을 무탈하게 살아내는 것. 그 평범한 일이, 실은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어른이 되어갈수록 체감하는 것 같다.



아빠가 너무나 그리웠던 또 한 번의 설날이 지났다.

새해, 우리는 또 아빠의 빈자리를, 그 슬픔을 꾹꾹 누르며 저마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 살아내리라.

부디, 올해는 이 이상의 슬픈 일이 더는 없기를, 가족 모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아빠 없이도 단합되는 하나의 가족이 되기를.

하늘에서 아빠가 슬퍼 우는 일은 없도록, 우리 모두 더 힘을 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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