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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Nov 18. 2022

열 손가락 붕대 감고, 슈베르트!

마흔넷_잃어버린 열정에 관하여.

엄마, 손가락 치료 좀 해 주세요. 너무 아파요 진짜.


 아들이 잠을 못 이루고 말했다. 어두운 방 불을 켜고, 아들의 손가락을 살펴보았다. 열 손가락이 빨갛게 '익어 '가고 있었다.


 우리 아들은 수포성 표피박리증이라는 희귀 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수포가 생기는 질환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은 피아노를 사랑한다. 가끔 오래 피아노 연습을 하고 나면 손가락에 수포가 생겨 고생을 하게 된다.

 치료 방법은 딱히 없다. 수포가 차 오르면 터뜨릴 수 있지만 우리식 표현대로 '아직 덜 익은' 수포는 자칫 잘못 바늘로 찌르면 생살을 찌를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아프다는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 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얼음찜질을 했다가, 멍에 좋은 연고를 발랐다가 뭐라도 해 주려 호들갑을 떤다.


 아들에게, 손이 좀 나을 때까지 당분간 피아노 학원을 쉬자고 했다. 웬만해선 아파도 학원을 빠지지 않는 녀석인데, 이번엔 영 못 참겠는지 내리 이틀을 쉬었다. 그리고 삼일 째 되던 날, 아들이 말했다.


손가락에 그거 좀 감아줄 수 있어요?


 '그거'는 아들과 같은 질환을 가진 환아들이 주로 사용하는 특수 드레싱 제재를 말한다. 아들에게 가장 아픈 부위가 어디냐고 물었다. 아들은 손가락 하나하나를 다 만져보더니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열 손가락이 다 아파요.


 다 나을 때까지만 참아 보라고, 피아노는 그다음에 치면 되지 않냐고 타일러 보았지만, 아들의 마음은 확고했다. 우리 둘 다 안다. 언제 나을 거란 기약이 없다는 걸. 1주 만에 낫기도 하고, 몇 주를 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곧 콩쿠르도 있고, 피아노를 잠깐이라도 치고 싶다며 열 손가락을 다 드레싱 해 달라고 말했다.


 

열 손가락 붕대를 감고도 아들은 피아노를 쳤다.

아들이 연습하던 곡은 슈베르트의 즉흥곡 (op90 no2 )으로, 한음 한음 정확하고 빠르게 연주하는 곡이다. 건반을 누르는 순간마다 고통이었을 텐데, 아들은 연달아 두 번이나 같은 곡을 연주했다. 열 손가락 붕대 투혼으로 치는 슈베르트는 또르르 굴러가는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뚝뚝 떨어지는 눈물 소리 같기도 했다.


 붕대를 감고서는 피아노를 칠 만했던 모양인지, 아들은 학원엘 가서 연습을 더 하겠다고 우겼다. 그럼 치다가 아프면 그만하라고,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고 다짐을 받고 피아노 학원엘 보냈다. (학원 앞에서 창피하다고 손가락 붕대를 다 벗어 버리고 연습을 하러 갔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고!) 아픔을 넘어선 아들의 열정에 뭉클했고, 특이한 피부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원 없이 할 수 없는 아들이 혹여나 맘의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걱정되고, 속 상했다.


 몇 주 후, 아들은 콩쿠르에서 학년 대상을 차지했다. 그리고, 나는 아들을 마음껏 칭찬했다. 너는 나의 스타라고. 대상을 차지해서 훌륭하다기보다는, 너의 열정과 노력이 대상감이라고.




 아들처럼 나에게도 열정의 순간들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바이올린을 잘하고 싶어서 매일 음악실에서 살았다. 한 번은 지역 콩쿠르가 있었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4명의 아이들이 참가했다. 나를 제외한 3명은 개인 레슨을 받았지만, 없는 형편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나는 독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같이 학교에 와서 수업 시작 전까지 연습을 하고, 수업 후 또 연습을 했다. 차가운 음악실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비발디 사계와 스즈끼 3~4권을 죽어라 연습했다. 최종 선택한 콩쿠르 곡은 '즐거운 나의 집'이었는데, 콩쿠르 당일, 실외 유리창을 보며 연습을 하고 있는 날 보고, 지나가던 한 남자분이 누구에게 레슨을 받고 있는지 물어보셨었다. 혼자 연습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더니 아내분이 전공자라며 레슨을 받아 볼 의향이 없냐고 물으셨고. 나중에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는 그분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콩쿠르 결과는, 3등쯤 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나는 조회 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그 곡을 다시 한번 연주하게 되었다. 후들후들 떨렸지만, 짜릿하고 뿌듯한 경험이었다. 전공을 하고 싶어서 애가 달았고, 가난한 형편 때문에 전공을 할 수 없어 좌절했다.


 20대에는 또 다른 꿈을 향해 달렸다. 잠 못 자고 제 때 먹지 못하면서도 잘 해내고 싶어서, 청춘을 다 받쳐 일했다. 고지에  올랐을 때 임신을 했고, 출산과 동시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력단절 여성이 되었다.

 30대에는 아들을 치료하는데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어떻게든 좋은 치료약을 찾아내고 싶어서 안 되는 영어로 외국 사이트를 밤새 뒤지고, 낮에는 아이를 치료하느라 시름했다.


 그렇게 나도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 쏟았던 열정의 시간만큼, 이제 마흔이 넘은 나는 지치고, 늙었다.


 다시, 내게 열정이 생길까? 파도처럼 거침없이 휘몰아치던 열정이, 고요하고 잔잔한 마흔의 내 삶에 다시 찾아올까 말이다.

 아들의 열 손가락 붕대 투혼이, 아픔을 이겨내는 너의 열정이 도화선이 되어, 잃어버린 나의 열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마흔넷, 지금의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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