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넷_'처음' 알거나 하게 된 것들에 대하여.
엄마, 깻잎이 풍성해도 너무 풍성해, 따도 따도 계속 나.
그럼 깻잎을 따서 백장씩 묶어서 소금물에 절여 놔, 나중에 먹으면 밥도둑이야.
씨처럼 생긴 애들도 나 있는데, 이건 어떻게 해? 씨를 받아서 말릴까? 심으면 깻잎이 또 나나?
씨는 좀 더 있다가 털어서 갈아먹으면 되지?
깻잎 씨를 먹어?
깻잎 씨가 들깨잖아. 네가 먹는 들깨 가루.
에? 그 들깨가 이 깻잎의 씨앗이라고?
올해 나는 난생처음으로 제대로 된 텃밭을 시작했다. 아파트에서 분양하는 화분텃밭은 몇 번 해 본 적이 있지만, 땅을 빌려 주말농장을 해 본 건 처음이었다.
거름을 주어 좋은 땅이었는지, 별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농작물은 쑥쑥 잘 자라 여름에 솔찮게 재미를 봤다.
가지, 고추, 파 요런 야채들은 화분 텃밭에서 이미 손맛을 보았던 것들이지만, 참외와 옥수수를 수확했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봄에서 여름까지 한바탕 수확이 끝날 때 즈음. 친정엘 갔다가 깻잎 모종을 들고 와서 심었는데, 키가 쑥쑥 자라더니 텃밭 가득 자리 차지를 해 버리는 것이었다. 배추와 무를 심을 작정을 하고 깻잎 나무를 한 그루만 남겨 놓고 뽑아 버렸는데, 그 한그루 마저도 쑥쑥 자라 잎을 풍성하게 이루었다.
매주 주말농장을 갈 때마다 깻잎을 따와서 어떤 날에는 김치를 담그고, 어떤 날에는 쌈을 싸 먹고 말 그대로 '뽕'을 뽑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씨앗인지 꽃인지 모를 것들이 생겨 있었다.
씨는 좀 더 두었다 털어서 갈아먹으면 되지?
엄마의 말씀에 나는 머리를 한대 띵~ 얻어맞은 것 같았다.
마흔을 넘게 살면서, 깻잎과 들깨의 사이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막연히 들깨는 깻잎과 다른 것일 줄 알았다. 어떻게 이걸 모를 수가 있지?
와, 나 바본가 봐. 그걸 왜 몰랐지?
굳이 생각할 일이 없으니 모를 수도 있지.
엄마는 관심이 없으면 그럴 수 있다고 그게 무슨 별 일이라도 되냐고 하셨지만, 들깨가 깻잎의 씨앗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나? 나만 바본가?
어느 날, 나는 모임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물었다.
깻잎의 씨가 들깨인 줄 아는 사람?
몇몇은 그걸 왜 모르냐며 어이없어했지만, 나처럼 깻잎과 들깨의 사이를 모르는 이가 또 있었다. 오호, 나만 바보는 아니었 --;;
그럼 참깨는? 참깨 나무는 달라?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참깨 나무는 들깨 나무와 다른 것인가? 당연히 다르지 않을까? 우리는 지식 창을 열어 검색해 보았다.
깻잎의 사전적 의미는 들깻잎과 참깻잎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고,
‘깨’라는 공통된 이름이 붙여졌지만, 참깨와 들깨는 식물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식물이며,
우리가 식용으로 먹는 깻잎은 대부분 들깻잎이다.
그럼 참깨 잎은 안 먹어?
그.... 먹어도 되지 않을까? 아... 안 먹나? 모르겠다. 깻잎이 뭐길래~ 날 이렇게 지식의 꼬꼬마로 만든단 말인가! 나름 교양과 지식을 채우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흔이 넘어서도 내가 모르고 있는 것들이 실상 꽤 많다는 걸 깻잎과 들깨 사이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새삼, 000 작가를 모른다고 남편에게 핀잔을 준 것도, 뉴질랜드가 오세아니아 대륙에 있는 걸 모른다고 아들에게 뭐라 한 것도 부끄러워졌다. 아직 배우지 못했고, 관심이 없다면 모를 수밖에 없는 일임을, 내가 바보였다고 생각하는 순간 깨달은 것이다.
마흔도 배워가는 나이다. 관심이 없으면 모를 수 있는 나이. 나는 바보가 아니다. (뭐 그렇게 위로를 해도 깻잎과 들깨 사이를 몰랐던 건 좀 너무했다 싶지만.)
마흔넷, 나는 올해 처음 알게 된 것이나 처음 시작하게 된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마흔넷에 알게 된 것>
-깻잎과 들깨의 사이.
-들기름은 냉장 보관해야 한다.
(얘길 듣자마자 실온 보관하던 들기름 냉장 보관함. 이미 늦었...)
:들기름은 공기 중에 쉽게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2개월 내에 섭취하는 게 좋으며,
들기름에 참기름을 부어 (8:2 정도의 비율) 보관하면 참기름에 천연 항산화 물질이 들어있어
보관성이 향상된단다!
:어머니~ 왜 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으셨나요호~ 엄마의 들기름은 냉장고에 들어 있었다!
-야구 선수 중에 소크라테스가 있다. (아들이 하도 소크라테스 응원가를 불러대서 알았..)
-매수는 사는 것, 매도는 파는 것 ㅎㅎ (주식에 관심 1도 없다가 아들 생일 선물로 주식을 한 주 사주었다. )
-자동차 보험과 세금 (이렇게 비싼 줄 몰랐다--)
<마흔넷에 처음 경험하는 것>
-브런치에 글쓰기 ^^ ( 새로운 세상을 경험 중)
-웹툰! (마흔넷에 처음으로 웹툰을 보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들깨 수확 (갈지 않아도 들깨 향이 굿굿)
-귤껍질을 까서 곱게 썰어 자연 건조하여 귤피차 만들기 (이러다 먼지 차를 마시게 되는 건 아닐까? --;;)
-대봉, 자연건조로 곶감 만들기 (절반 실패 ㅜㅜ 곶감인지 곰팡이 덩어리인지)
-무청 말려 시래기 만들기 ( 시래기가 아닌 쓰레기로 변신중)
-필라테스 (엄마들의 앓는 소리로 가득 찬 한 시간)
-아빠의 첫 추도식 진행 (울지 않고 잘 참았지.)
-아들의 첫 대면 콩쿠르 (아들보다 엄마가 더 떨었다!)
잠깐 생각해 보아도, 올해 알게 된 것과 경험한 것들이 참 많다. 40대를 지나는 동안, 나는 더 많은 지식을 쌓고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되겠지. 관심이 없으면 모를 수 있고, 배우지 않으면 알지 못할 수 있다. 무언가를 모른다고 해서 누굴 비난할 필요도, 내가 바보라 느낄 필요도 없다.
(이즈음 쓰고 있는데, 아들이 뭐하냐고 묻길래, 올해 네가 알게 된 것 가운데 가장 쇼킹한 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비례 배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헛. 그래. 그럴 수 있겠구나... --;;)
이번 달 말, 나는 또 다른 생애 첫 경험을 하나 예약하고 있다. 다름 아닌 김장이다.
지금 주말농장에서 잘 커주고 있는 싱싱한 배추들을 뽑아다가 남편과 아이 우리 셋이서 첫 김장을 해 볼 생각인데, 늘 김장을 거들기만 하던 내가 주도적으로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준비하고, 버무리는 일들을 해야 한다. 모두 첫 경험이 될 것이다. 김장에 성공하기 위해서 나는 또 열심히 김장에 대해 찾아보고, 배워가겠지.
마흔, 우리는 아직도 성장 중이다. 더 알차게 영글어 갈, 우리의 마흔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