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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Nov 15. 2022

있는 게 없어서 바람은 못 피웁니다.

마흔넷_가진 게 없는 중년에 대하여.

 남편 핸드폰에 위치 추적 앱을 깔았어.


 어느 날 A가 말했다. A의 남편은 건설 현장 소장이다. 요즘은 상황이 좀 다르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이른바 '뒷돈'으로 불리는 뇌물을 많이 받아 상품권이나, 현금을 두둑이 들고 다녔다고 한다. 술자리도 많고, 늦게 오는 날도 많아서 혹시나 바람을 피우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었다고.


 특히 A의 남편 친구들 중에는 솔로가 많은데, 최근 남편이 솔로인 친구 몇 명과 골프를 치러 나가서는 새벽 1시가 되도록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 늦게 들어온 남편의 핸드폰에 몰래 위치 추적 앱을 깔았다나?


 왜? 남편이 딴짓할까 봐?
 딴짓할까 봐 걱정할 수 있어 좋겠다.


 옆에서 듣고 있던 B가 말했다. 자신은 걱정할 일이 없다고. 남편 얼굴이 반반하지도 않거니와, 체력이 약해서 바람을 피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칼퇴해서 집에 들어오면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자마자 잠들기 바빠.


 B는 회사원인 남편이 퇴근하기가 무섭게 피곤해서 잠만 잔다며, 집에서 남편과 이야기 나눌 시간조차 없다고 했다. 밤에 깨어있질 않으니 부부관계는 물론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마흔 후반인 자신의 남편은 이제 성적 욕구가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바람도 체력이 있어야 피는 거야.

 

  B는 오히려 이런 남편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부부관계 그 따위 너무 귀찮고 피곤하지 않냐고. 생각해보니 우리 집 양반의 체력도 B 남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너는 걱정 안 돼? 주말 부부잖아.


 A가 뭔가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현재 우리 집 양반은 장기 출장을 가서 주말에만 집으로 온다. 엄마들 사이에서 '삼 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그 주말 부부를 한 지 3개월쯤 되었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하루 종일 서류 작업을 하고, 어떤 날은 야간을, 일찍 퇴근하는 날엔 집에 들어가 잠자기 바쁜 남편이라 '바람'의 가능성에 대해서 1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물론 반반한 얼굴도 아니고 말이다.


 한 번은 회식을 하고 온 남편이 술에 잔뜩 취해 온 적이 있었는데, 횟집에서 회식을 했다는 남편의 겉옷에서 난데없이 마카롱 (술집에서 기본 안주로 나오는 과자)이 툭! 튀어나오면서, 거짓말이 탄로 난 적이 있다.


 소장님들이 하도 불러 달라고 해서.


 남편의 변명인즉,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부르게 되었는데, 자기는 술 한잔 먹고 잠이 쏟아져서 노래방에서 엎드려 잠만 잤다는 것. 나한테 얘길 하면 쓸데없는 걱정을 할까 봐 말을 안 했다나.  


 왜? 누님들도 직업 정신 좀 발휘하게 신나게 놀았어야지.

 나는 쿨하게 대응했다. 노래방에서 잠을 잤다는 남편의 말을 1도 의심하지 않았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술을 워낙 못 마시고 싫어하는 사람, 담배도 피울 줄 모르고, 지저분한 곳에 가는 걸 싫어하는 사람. 결정적으로 아무리 고함량의 비타민 B군을 섭취해도 피곤에 허덕여 틈만 나면 잠자고 싶어 하는 사람. '바람피울 시간에 잠을 더 자겠다'는 남편의 말이 진심임을, 며칠 그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알 만큼 그는 늘 피곤에 '쩔어' 있었다.


 주말 부부를 하는 지금도 그 피곤은 개선되질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달까, 항상 아들 얼굴이 보고 싶어서 영상통화를 하는 남편은 피곤에 잠식되어 있었고, 언제 어디서든 3초 안에 잠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잠잔다고 영상 통화하고, 끊고 나서 옷 입고 나가는 거 아니야?


  A가 의심의 눈초리로 말했다.



 며칠 전 집으로 온 남편은 머리카락이 더 빠져 있었다. 남편은 절대 탈모가 아니라며 인정하기 싫어 하지만, 서른 후반 즈음 머리카락이 얇아지기 시작하더니, 몇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해 지금은 맵거나 뜨거운 것을 먹었을 때 정수리에 맺히는 땀방울까지 다 보일 정도가 되었다.  


 차라리 빡빡 미는 게 어때?


 나의 말에 남편은 무척 화를 내며, 머리카락은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했다. 마흔이 넘으며 달라진 건 머리카락뿐만이 아니다.

 30대 초반만 하더라도 절대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남편의 배는 어느덧 출산에 임박한 산모의 배만큼 나와 있다. 결혼하고 살이 붙기 시작한 남편은 25KG 정도 증량이 되었는데, 그 찐 살의 대부분이 배에 붙은 모양이다.


 똑바로 서서 내 거시기가 보이면 아직 배가 덜 나온 거야.
 에이~ 안 보일 거 같은데?


  서로에게 하나도 야하지 않은, 야한 말을 주고받던 어느 날, 남편에게 물어봤다.


 너도 바람을 피우고 싶냐?


 남편은 한숨을 쉬며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야, 바람도 돈이 있어야 피는 거야.


 월급 명세서 꼬박 보내주고, 용돈 타 쓰는 형편에 무슨 바람을 피우겠냐는 것이다. 바람도 능력이라나?

 남편은 씻고 나오자마자, 저녁을 차리기도 전에 TV를 틀고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배 나오고, 머리 빠지고, 힘없고, 돈 없는 중년 아저씨가 된 남편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나온 배를 쿠션인 양 편하게 손을 올리고 코를 골며 저질 체력의 진수를 과감히 보여주고 있는 바깥양반이,  왠지 짠하게 느껴졌다. (뭐 바람이라는 게, 꼭 잘 생기고 머리숱이 많고, 몸매 좋고, 돈이 많아야지만 피우는 건 아니지만.)


 머리카락이 없어서, 체력이 달려서, 돈이 없어서,

 가진 게 없어 바람은 못 피운다는 중년이여~ 가진 건 없어도 밥은 배불리 드시게.


 차려 놨을 때 먹어라!


 나는 남편에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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