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콩 Nov 11. 2022

내가 머리를 쥐어뜯을 때, 당신은 치킨을 뜯는다.

마흔넷_ 아이 학교를 선택해야 하는 나이.

중학교? 가까운데 그냥 보내.


 아이 중학교를 어디로 보낼까 고민하는 내게, 남편은 쿨하게 말했다.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이다. 그동안 나 역시도 가까운 곳이 제일이라며 중학교에 대한 별 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금주 월요일 아들이 중학교 배정원서를 들고 왔다.

 막상 서류를 받고 보니 그저 아기 같은 아들이 벌써 중학교엘 가는구나 싶어 코끝이 찡~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하게 키운 아들이 아니라, 눈물로 콧물로, 험난한 여정 속에 키운 아이다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고 할까? (이러다 졸업식 때는 대성통곡 하는 게 아닐지. 헛)


 우리 지역에는 총 3개의 중학교가 있다.

 우선 A학교는 지금 아이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 아이들 대부분이 가는, 아파트에서 가장 가까운 중학교이다. 그동안은 B학교와 비교해 '공부하는 애들은 여기로'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최근 혁신학교가 되었다.


 B학교는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혁신학교 중 하나다. 혁신학교의 초창기 모델 학교이고, 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인근 교사들이 연수를 오는 학교? A학교보다는 조금 더 진보적인 분위기라고 할까. 동네 오래 사신 분들에겐 여전히 '노는 학교'라는 인식이 남아있는 학교다.


 C학교는 최근 신설된 학교. 주변 지역이 개발되면서 아파트 대단지들이 들어서고, 새로 생긴 학교라 아직 졸업생은 없다. 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 엄마를 아는데, 아이가 노느라 너무 즐겁다고 했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 동네 엄마들에겐 '공부 빡세게 시키는 학교'로 소문이 나서, '우리 아들 공부 쫌 해' 하는 엄마들은 한 번쯤 고려해 보고 있는 학교 되시겠다.  


 우선 C학교는 고민 대상에서 뺐다. 매번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중학교가 멀어 3년 내내 버스로 통학했던 내 경험상 그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물론 지나고 보면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지만 말이다. 자칭 대중교통 덕후인 아들은 살짝 관심 있어했지만 우선 3 지망으로 두기로 했다.


 문제는 A학교와 B학교 중 1 지망을 어디로 쓸 것인가였다. 거리는 집에서 두 학교 모두 가깝지 않은 거리이고, B학교가 살짝 더 멀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아들은 시립 소년소녀 합창단을 하고 있는데, 중학교에 가서도 계속 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아이의 꿈을 지지해 주는 학교가 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B학교로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교복이 자유롭다는 것도 큰 매리트였다. 특이 피부를 가진 아들이 매번 교복을 입고 다니는 게 걱정이 되었는데, 평상복을 입고 다녀도 되는 학교라 피부에 자극이 없는 옷으로 입을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반면, 소심한 아들이 아는 이 별로 없는 학교에 적응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스스로도 새 친구를 사귈 자신이 없다고 하기도 했고.


 A학교는 시립합창단 활동을 할 경우 적극적인 지지를 기대할 수 없다. 공연을 마치고 나면 봉사활동 점수를 얻을 수 있는데, A학교에서는 인정해 주지 않는다. B학교보다 그런 부분에서 보수적이라 할 수 있다. 교복을 입긴 하지만, 요즘은 생활복 형태의 교복을 많이들 입기 때문에, 아들의 특이한 피부에 교복이 큰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다. 결정적으로 아들이 교복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하, 중학생이 되면 교복을 꼭 입고 싶다나.

 

 B 학교엔 일진이 있대.
 A 학교에 있다던데?


 한동안 엄마들 모임에서도 단연 중학교 이야기가 화두였다. 같은 합창단을 하고 있는 아이들 중, B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의 학부모는 만족감이 높았고, 반면 A학교에 보내고 있는 엄마들은 후회를 했다. 계속 활동을 할 것이라면 B학교가 낫지 않겠냐는 의견들이 우세했다.


 종합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아들에게 B학교가 나을 것 같았지만, 늘 친구 사귀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아들이 낯선 아이들 사이에서 돌파를 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그걸 왜 자기가 결정해? 애한테 맡겨. 그래야 원망을 안 들어.


 동네 친한 언니가 너무 고민하는 나를 보고 말했다. 자기는 아이가 결정해 온 순서대로 적고 도장만 찍었다고.


 아들은 당연히 A학교를 가고 싶어 했다. 학교 친구들이 다 A학교로 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사실, 슬프게도 아들에게는 친한 친구가 없다. 특이 피부 때문인지 자존감이 낮은 아들은, 친구들과 친해지는 게 참 힘든 일이었다. 눈에 익숙한 아이들이 있는 곳이 맘이 편하다는 걸까. 난 차라리 아들이, 아는 이 없는 B학교에 가서 자신의 이미지도 새로 만들고, 좀 더 적극적으로 친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까지 지원서를 작성해 내야 하는데, 목요일 밤이 되도록 결정을 하지 못했다. 처음엔 무조건 A학교를 가겠다던 아들도, 합창단 활동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단 얘기에 B학교를 가야 하나 고민했다. 우린 둘 다 "아, 모르겠어~"를 외치며 선택을 못하고 있었다. 그때,  지방 장기 출장 중인 남편에게 영상통화가 왔다. 늘 그렇듯 아들 얼굴만 보면 비타민 충전이 되는 남편이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해~
뭐하긴, 아들 중학교 배정 지원서 써야 해서 고민 중이지.
그래?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몰라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중이야.
어. 난 이제 마치고 00 치킨 먹으러 가는 중이야.
하, 나는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데 당신은 치킨을 뜯으러 가시는 구만.


 난 좀 서운했다. 늘 < 남편들은 다 그래>의 정석과 같은 남편이라,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들의 중학교를 결정하는 문제인데 조금은 더 관심을 가져 줄줄 알았다.


 역사가 깊은 학교가 좋지 않을까?
 그럼 B학교인데, 애가 아는 애들은 다 A 학교로 가서, 친구 사귀기가 힘들 수 있어.
 그럼 가까운 학교로 선택하면 되지?
 그럼 A학교인데, 거긴 합창단 활동을 지지받지 못할 거 같아서.
 그럼 애가 가고 싶다는데 그냥 보내지?


 단순해서 참 편한 남편이다.


그래 봤자, 중학교야. 뭘 그리 고민해.

 

 가끔은 남편의 머리였으면 할 때가 있다. 나는 평소에도 너무 많은 고민을 하고, 결정 장애로 선택을 힘들어한다.


  밤 열 시. 결정의 시각이 왔다.

 나는 아들과 지원서 한 장을 식탁에 내려놓고, 마주 보고 앉았다. 어디를 가야 할까 고민하던 아들은 드디어 결심이 섰다는 듯이 비장하게 말했다.


난 A학교로 갈래. 아는 애들이 있는 게 좋아.
 그래, 어딜 가나 기죽지 않고 너만 씩씩하게 잘 지내면 돼. 대신 네 선택에 후횐 하지 말자. 넌 어디서든 잘할 거야.


 난 더 고민 없이 지원서 1 지망에 A학교를, 2 지망에 B학교를 적었다. 아들의 결정에, 폭발 직전이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정리되는 것 같았다. 몇 날 며칠 고민하며 머릴 쥐어뜯던 시간들이 실은 큰 의미 없었던 것이다. 이럴걸 왜 그리 고민했던 것인지. 머리를 쥐어뜯을 시간에 치킨이나 뜯으러 간 남편이 더 현명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고민하면, 아이도 흔들리고 고민을 하더라. 그래, 고작 중학교이다. 지방 중학교에서 어디를 보내든 무슨 큰 차이가 있었을까. 어디로 보내야 하나 하는 고민보다는, 어디서든 아이가 잘 적응하고, 씩씩하게 학교 생활을 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해 주는 게 지금 엄마의 역할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치러야 할 아들의 고등학교, 대학교 선택의 순간에도 너무 많은 고민들에 머리를 쥐어뜯기보다는 슬기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엄마가, 우리가 되기를.


 아들, 우리도 오늘 밤 치킨이나 뜯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을 바꿀 수 없어 가구를 옮겼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