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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Nov 08. 2022

남편을 바꿀 수 없어 가구를 옮겼습니다.

마흔넷_가구 옮기기 힘들어지는 나이.

 나는 이중적이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면서도 싫증을 잘 낸다. 그 이야기인즉, 옷이나 신발, 노트북 등 어떤 사물은 마르고 닳도록 애용하면서, 샴푸, 화장품, 머리핀 등 소모품의 경우엔 싫증이 잘 난다. 머리핀이야 잃어버리기 일쑤라 자주 바뀐다 하더라도 샴푸, 화장품 등은 끝까지 쓰는 일이 잘 없다. 처음에는 향기도 거품도 마음에 들어 잘만 쓰던 샴푸가 어느 날, 거품 양이 맘에 들지 않고, 향기가 싫어지거나, 헹구고 나서 뻑뻑해지는 질감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종류의 샴푸를 탐색하고, 주문해 쓴다. 그래서 우리 집엔 쓰다 만 샴푸가 적어도 두세 개는 놓여 있다. 다행히도 아무거나 잘 쓰는 남편이 잔반 처리반처럼 내가 싫증난 샴푸를 처리해 주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이유 없이 이 성격을 좀 고쳐야겠다 생각이 들었고, 나는 곧 스스로에게 미션을 던졌다.

스킨, 로션, 선크림 끝까지 사용해보기.

 새로 산 선크림은 양이 많지 않은 것이었다. 착한 가격에 백탁 현상이 없는 비건 선크림. 요번에는 기필코 다 쓰고 나서 새로 구입하자 마음먹었다. 백탁 현상이 심해 얼굴이 갸루상이 되어도, 좋은 성분이라 그렇다며 참고 썼다.

 스킨과, 로션은 선물을 받은 것이었는데 절반쯤 사용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 터였다. 참자. 참아야 한다. 별 다른 트러블도 없었고, 유분기 많은 제품은 좋아하지 않는데 다행히 유분기도 많지 않은 화장품이었다.

 동네 올리브 가게를 지날 때마다 발길을 주춤했지만, 나는 잘 참아냈고, 기어이 미션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내 나이 마흔셋 쯤이었을 것이다.

 



 나름 노력을 했지만, 싫증 잘 내는 성격이 한 번에 바뀌진 않더라. 이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인데, 싫증이라기보다는, 싫어진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어느 날 그 사람에게서 거슬리는 무언가 하나를 발견하게 되면, 그것이 편견이 되고 그 사람을 점점 멀리하게 되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래서 결혼을 생각할 때, '내가 과연 이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서로에게 푹 빠져있는 상태라 그런 고민에 대한 답은 언제나 예쓰였다. 내 눈에 단점이 없어 보이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그 남자와 14년을 함께 살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남편이 싫었던 적이 왜 없었을까. 그가 이 글을 본다면 충격적일 수 있겠지만, 언젠가 한 번은 남편이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컵에 또르르 부어 마시는데 그 물 마시는 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다. 꿀꺽, 꿀꺽, 넘기는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그 이후, 남편이 뭔가 액체 종류의 것을 마시기만 하면, 그 꼴깍 거리는 소리가 커서 거슬렸다. 밥을 먹고 난 이후 이빨 사이에 낀 음식물을 빼느라 쩝쩝 거리는 소리, 젊었을 땐 맡을 수 없었던 기름진 아저씨 냄새, 거친 발바닥에서 떨어지는 각질들도 싫었다. 그도 살이 찌고 나이가 드니 어쩔 수 없이 변하는 부분이 있겠지,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 그렇겠지. 그렇다고 남편을 바꿀 순 없잖아?  

 



 어느 날, 혼자 아침을 먹고 있을 때였다. 밥을 입안 가득 넣고 씹으며 찬찬히 거실을 둘러보는데, 거실에 놓여있던 전자피아노 위치가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새까만 피아노가 거실을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서 밥을 먹다 말고, 피아노 이동을 결심했다. 피아노 놓을 위치를 고민하다 피아노를 치는 아들의 방으로 밀어 넣기로 했는데, 좁은 방에 피아노를 넣으려니, 아들방에 있던 옷장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안방과 서재방 중간의 공간에 옷장을 옮기고, 거기에 있던 장식 테이블을 TV 앞으로 옮기고, 티비장을 빼서 베란다로 옮기고, 마치 도미노처럼 이어져 가구 대 이동이 시작됐다.


 어떤 날에는 침대를 세로로 옮겼다가, 어떤 날은 큰 테이블을 거실로 뺐다가, 식탁을 서재로 넣었다가 어디서 그런 큰 힘이 나는지 나는 한 달을 머다 하고 가구를 대이동을 시켰다. 혼자 침대를 옮기다가 한 번은, 침대 중간을 지지하고 있던 받침대가 부러져 침대 프레임을 통째 버려야 했던 적도 있다. 하도 자주 옮기다 보니 서랍장이고, 책상이고 흔들리는 이빨처럼 삐걱대며 교체될 날을 기다리는 상태가 되었다. 가만 보니, 내가 무언가에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우울할 때, 습관처럼 가구를 옮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우울증이 달아난다면 좋은 치료 방법이겠지만 대신 가구가 병이 드니 썩 좋은 방법은 아닐지도.  


 어느 날, 남편이 보다 못해 물었다.

 왜 그렇게 가구를 자주 옮겨? 옮겨봤자 결국은 그 자리에 오더만?
 당신을 바꿀 수가 없어서, 가구를 옮기는 중이야.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 콧웃음을 날렸다.  

 고오맙다.
 새로 바꾼다고 해도 나보다 더 좋으리란 보장은 없을걸?
 난 그 자리에 두고, 가구나 계속 옮겨~  




 그런데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이제는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침대도 옷장도 번쩍 들어 옮기던 때가 있었는데, 마흔이 넘고 나서는 허리가 아파서 영 힘을 못 쓰겠더라. 예전에 쓰던 복대가 있어 그걸로 허리를 고정을 하고 가구를 옮기던 어느 날, 털썩 주저앉아 울어버린 적이 있다.


 예전과 다르게 힘이 나지 않아서인지, 복대를 한 내 모습이 처량해서인지, 치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엄두가 나질 않아서인지 모르겠다.


내가 왜 이렇게 까지 해서 가구를 옮기고 있는 거지?   


 이번이 마지막이다. 가구 옮기는 건 이제 그만 하자. 난 겨우 겨우 정리를 했다. 뒷정리도 예전 같았음 몇 시간 걸리지도 않고 휘리릭 끝냈을 텐데,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도록 반도 정리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가구 대 이동 한번 하는데 최소 일박 이 일이 걸리더라.


 마흔, 가구 옮기기가 두려워지는 나이.

 나는 싫증을 잘 내는 성격 때문에, 매년, 매달, 가구를 옮기면서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을 체감했다. 이제 집안 가구들 못살게 구는 걸 그만두자. 가구도 나도 늙고 병들어 가더라. 이제 그만 주변의 모든 것에 익숙해지자. 남편도, 가구 자리도 구관이 명관이다. 싫증도 젊을 때나 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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