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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Nov 29. 2022

콜라 때문에 이혼 위기입니다.

마흔넷_끊어내지 못하는 습관에 대하여

 "앞으로 내가 네 앞에서 콜라를 마시면 사람이 아니다!"

 어느 날 콜라를 마시려다 말고, 남편이 나에게 선언했다.


 남편은 콜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태교 적부터 남편은 콜라를 마시게 되었는데, 그 이유인즉, 시어머니께서 입덧이 너무 심하여 열 달 동안 콜라를 궤짝으로 사놓고 드셨단다.  좀 과장하자면 엄마 뱃속에서  콜라 따는 소리로 태교를 했고,  탯줄로 콜라를 공급받은 모태 콜라남(?)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어릴 적부터 콜라를 즐겨 마셨는데, 일명 식후땡을 하는 흡연자처럼, 식사 후에 콜라를 마시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몸속에 수분 대신 콜라를 채우는 지경이 된 것이다.

 매일 마시니 콜라는 박스채 구매하는데, 그가 마트에서 콜라를 선택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oo브랜드사 콜라일 것, 캔에 든 것, 용량이 큰 것.

 

 남편은 장을 본 날, 다른 건 몰라도 콜라는 꼭 자기가 챙겨 집으로 나른다. 콜라를 들고 신중하게 나르는 그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뭣이 그리 중헌디' 할지 모른다.  남편이 그리 '중허게' 콜라를 '모시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흔들리면 못 마셔."


 흔들린 콜라는 뚜껑을 따는 순간, 요란한 소음을 내며 이산화탄소를 마구 뿜어낸다.  아들이 콜라를 가져다주다 떨어뜨린 날, 그래서 흔들린 콜라에서 거품이 쏟아져 나왔을 때, 그는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을 지었었다.

 물론, 남편이 흔들린 콜라캔을 안전하게 따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흔들린 콜라를 따기 전, 뚜껑 옆 부분을 동전이나 숟가락 등을 이용해 수십 번 두드려 주면, 콜라 속에 있던 기포가 위쪽으로 올라가고,  콜라 내부 기포가 줄어들어 콜라 뚜껑을 따도 넘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온전한 콜라의 맛을 즐길 수가 없다나?


 콜라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게 가지고 와 차갑게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단다. 그래서 콜라를 사서는 아기를 안듯 두 손으로 품어 집으로 나르고, 집에 도착하는 즉시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두는 것이었다.

 '콜라도 과학'이라는 남편의 입을 빌리자면, 실온 보관한 콜라보다 냉장 보관한 콜라가 뚜껑을 땄을 때 탄산이 더 오래 유지된다고 한다. 그럼 실온 보관하던 콜라를 컵에 붓고 얼음을 넣으면 되지 않냐 싶지만, 차라리 그럴 바엔 얼음이 담긴 그릇에 콜라캔을 넣어 차갑게 하는 편이 더 낫단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 전 콜라를 냉동실에 넣어두고, 샤워를 하고 나와 콜라를 꺼내 마시는 게 남편의 중요한 루틴. 뭐 그에게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이렇게 콜라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하루 한 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학 동창인 남편은 가끔 점심을 먹기 전, 동창 녀석과 <PT콜라 누가 더 빨리 마시나?>같은 시시콜콜한_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_내기를 하곤 했다. 콜라를 늦게 마신 사람이 밥을 사는 게 룰이었다. 콜라가 무슨 애피타이저도 아니고!

 벌컥벌컥 목젖을 움직이며 콜라를 꿀꺽이는 남편의 모습이 연애 시절엔 참 시원해 보이더니, 이젠 참 거슬리는 모습 중 하나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너무 자주 콜라를 마셔댔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콜라를 마시는 양과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짐작 건데 살이 찌고, 나이가 들면서 소화기관도 약해진 모양이었다. 소화가 안되고 답답하니 콜라를 더 찾게 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가만 보니, 삼시 세끼, 밥을 먹고 나면 꼭 콜라를 마시는 것이었다. 아! 자기 직전에 또 한잔. 거의 하루 4캔은 기본이었다. 남편이 콜라를 마실 때마다 출산에 임박한 그의 배가 오버랩되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꼬박 콜라를 챙겨 마시지 말고, 대신 탄산수를 먹어보면 어떻겠냐고 권해 보았지만, 콜라 마시는 게 습관이 된 남편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콜라를 마시면 건강에 좋지 않다> 이 부분에 대해 남편은 절대! 극구! 인정하지 않지만, 알려진바로 콜라는 마시는 순간 많은 양의 당분이 몸속에 들어와 인슐린을 치솟게 한다. 간에선 이를 해결하려고 지방으로 변화를 시키려 하고, 그러다 보면 혈관에 지방이 쌓이게 되겠지. 콜라를 마시고 두세 시간 지나면 이뇨작용이 활발해져서 많은 영양분이 빠져나가게 되고, 치아 건강이 악화되고....  지식 창에 검색해 보기만 해도 콜라가 몸에 안 좋은 이유는 차고 넘치더라.


 그렇다고 내가 콜라를 절대 마시지 않는 사람이냐. 그렇지는 않다. 나도 가끔 속이 답답할 때 남편에게 한 모금 얻어 마시기도 한다. 그러니 콜라 회사여 오해하지 마시라. 남편에게 아예 콜라를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건강에 염려되지 않을 정도로만 정도껏 마시라는 얘기지.  


 나는 어느새 남편에게 "콜라 좀 적당히 마셔."라는 말을, "밥 먹어! "처럼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삼시 세끼 콜라를 챙겨 먹은 남편이 내가 저녁 설거지를 하는 동안 또 냉장고 문을 열고, 콜라를 마시려 컵에 붓는 것이었다. (이날은 캔 콜라가 똑 떨어져 집 앞 슈퍼에서 PT콜라를 사 와서는 아침, 점심, 저녁에 맞춰 아껴 먹고 있었다. --;;) 이미 거의 다 마시고 마지막 남은 소량의 콜라를 컵에 붓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던 내가 결국 한 소리 하였다. 


 "콜라가 보약이냐? 삼시 세끼 챙겨 마시게?"


 갑자기 남편은 따르던 콜라를 싱크대에 집어던지며 말했다.

 "내가 앞으로 콜라를 네 앞에서 마시면 사람이 아니다. 콜라 도 맘대로 못 마시게 하냐."

 (이 문장은 남편의 인격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순화시켰다. 남편과 사는 13년, 친구 시절 10년 도합 23년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나쁜 말을 사용하였다.--)


 어디서 성질을 부리냐고,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남편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화가 나서 입을 삐죽거리던 남편은 사과할 마음이 일 퍼센트도 없었고.


 5분 안에 사과하지 않으면 끝장이다.

13년 동안 참을 만큼 참았다. 이렇게 나를 존중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랑은  살지 않겠다.

내 성격을 잠시 잊고 있었나 본데, 내가 한번 마음이 돌아서면 두 번 다시 뒤돌아 보지 않는 사람인 거 알지 않냐.


 나는 남편에게 경고를 날렸다. 뭐 누가 보면 정말 유치한 걸로 싸운다 하겠지만, 원래 부부싸움이란 게 유치한 것에서 시작되어 쌓이고 곪아 결국 터지는 것이다.


 우린 둘 다 서로의 성격을 죽이지 못해 끝내 화해하지 않고 하루를 넘겼다. 남편이 다음날 카톡으로 장문의 사과글을 보내왔지만 나는 일주일 동안 그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정말로 이혼 서류를 뽑아 들고 작성을 할까 고민했다. 콜라 때문에 이혼위기라고 썼지만, 뭐 콜라 때문에 생각한 이혼이겠나. 그동안 나, 당한 거 많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콜라 때문에 얻은 결혼생활의 위기는 불안증이 있는 아들 녀석 때문에 일주일 만에 끝이 났다. 아빠를 용서해 주라는 둥. 나는 엄마 아빠와 같이 살고 싶다는 둥. 눈물이 그렁그렁 하는 아들을 보니 내가 엄청난 죄를 지은 거 같아 못 참겠더라. 부부싸움도 애 앞에선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어쨌거나, 콜라를 사랑하던 남편은 지금까지 2주가 넘도록 집에서 콜라를 마시지 않고? 못하고 있다. 뭐 이참에 콜라와 절연한다면 것도 좋을 일이지. 콜라 회사에서 좀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마흔 넘은 가장의 뱃살과 건강을 책임질 것 아니라면 이 현실을 받아주시길.


 몇십 년을 이어온 습관을 고치는 게 쉽지 않다는 거 잘 안다. 하지만 남편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에게 애정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콜라를 마시던, 독한 술을 마시던 상관 했을까. 그러니 남편아, 아내가 잔소리할 때는 사랑의 메시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애증의 마음을 담은 거라 생각하고 협조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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