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안녕 아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콩 Dec 07. 2022

아버지의 김치김밥

마흔넷_시그니처 음식에 관하여.

 아버지는 야식을 즐기셨다.

무슨 음식이라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맛있게 드셨다.

솜씨 좋은 아내와 두 딸이 있어 주방에 들어갈 일이 별로 없었던 아버지는 아주 가끔 출출하신 밤, 주방으로 잠입하여_엄마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_ 뚝딱 야식을 만들어내셨다.

 신김치를 물이 흐르지 않게 질끈 다음, 밥에 참기름을 섞으면 준비 끝. 조미가 되지 않은 돌김에 밥을 올리고 김치를 한가득 올려 둘둘 말면 아빠표 김치 김밥이 완성되었다.

 특별한 재료도 특별한 레시피도 없는 김치 김밥이지만, 아버지가 만든 김치 김밥은 정말, 너무, 환상적으로 맛있었다. 사실 돌김은 김밥을 만드는데 적합하지 않은 김이다. 뜨거운 밥이 닿으면 금세 눅눅해져 끊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수였던, 손 힘이 천하장사 저리 가라였던 아버지는 있는 힘껏 김밥을 말았다. 그래서 김밥의 옆구리가 터져도 밥알이 꽉 뭉쳐있기 때문에 김치가 새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야심한 밤, 불 꺼진 거실에 주방 등만 켜고 아버지가 만든 김치 김밥을, 무엇이든 맛있게 드시는 아버지와 함께 먹으면 세상 맛있어 엄지가 척! 절로 올라갔다.  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올리면 늘 등호처럼 김치김밥이 생각난다.


 일 년 전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암 선고를 받고, 항암 몇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한 채, 거의 한 달을 아무것도 못 드시고 돌아가셨다. 마지막 임종 면회를 기다리던 그 시간은 '피가 마른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제대로 알려주었다. 면회를 오라고 연락을 받은 날 아침, 나는 엄마 집 텃밭에 자라고 있던 시금치와 파, 양파 등을 수확하고 곱게 채 썰어 소고기 야채죽을 만들었다. 마지막이라는 게 믿고 싶지 않았고, 배고팠을 아버지에게 손수 음식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엄마 집 텃밭에서 나던 재료를 일부러 사용한 것도, 집에 너무 오고 싶어 하던 아버지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였다. 눈물 콧물 쏟으며 죽을 만들다 보니 맛있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인실에서 임종 준비를 하고 계셨는데,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못 드신 아버지에게 엄마는 소원풀이를 해 주고 싶어 하셨다. 숨 쉬는 게 힘들어 답답해하는 아버지께 시원한 콜라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게 해 드렸는데, 세상 시원하다고 웃으셨다.

 죽을 좀 끓여 왔다고 이따 먹을 수 있으면 좀 드시라고 했더니, 엄마가 나중에는 드실 수 없을 것 같다고. 지금 드리라고 하셨다. 만들어 간 죽이 아버지가 넘기기에는 너무 걸쭉하여 엄마가 물을 좀 타셨다. 그러니 안 그래도 맛없는 죽이 맛있을 리가 없었다. 아버지는 집밥이란 얘기에 있는 힘을 다하여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셨다. 그렇게 스스로 일어나 앉으시는 아버질 보니, 도대체 곧 돌아가실 분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떠 먹여드리는 죽을 5숟가락이나 받아 드셨는데, 정말 '허겁지겁' 드셨다.  나는 혹시라도 기도로 넘어가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숟가락에 3분의 1 정도만 죽을 떠 드렸다. 그러니 5숟가락이라 하더라도 실은 2 숟갈 정도의 양밖에 드시지 못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죽을 급하게 드시고는 진짜 꿀맛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정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드신 음식이 내가 해 드린 죽이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세상 많고 많은 맛있는 음식 중에 그 맛없는 죽을 마지막 음식으로 드린 게 죄송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나의 소고기 야채죽을 마지막으로 기억한 채 떠나셨고, 나는 두 번 다시 아버지의 김치 김밥을 맛볼 수 없게 되었다. 천국이 정말 있어서, 그래서 아버지가 그곳에 살아 계시다면, 둘째 딸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소고기 야채죽일까?


 어느 날, 친한 언니와 아버지의 김치김밥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는데. 언니가 아버지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음식이 있어 좋겠다고 했다. 시그니처 음식이라는 게, 그 사람과  그 음식을 즐긴, 추억을 함께 선물 받은 것 아니냐고.  

나중에 내가 죽고 나면, 우리 딸은 떠올려지는 음식이 있을까? 생각하니 좀 미안하네... 맛있게 해 준 음식이 없어서.  


 언니의 말을 들으며 가만 내가 해 온 음식들을 떠올려 보았다. 우리 남편은, 우리 아들은 무엇을 맛있게 먹었더라. 요란한 음식은 해 본 적이 없고, 늘 하는 건 된장찌개, 김치찌개, 각종 나물 정도.


그거 있잖아. 너희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거~ 김치 김밥!


 나는 깜짝 놀랐다. 나의 시그니처 음식도 김치김밥 이라니!

언니가 떠올린 나의 김치 김밥은, 묵은지를 씻어서 여러 장 펼쳐 김 대신 사용하고 참기름을 섞은 밥을 올린 다음, 쌈장, 다진 매운 고추를 차례로 올리고 돌돌 말아 잘라낸 '묵은지 김치 김밥'이었다.  가끔 속이 느끼하거나 가볍게 손님 대접을 할 때 만들던 음식인데, 언니는 그걸 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언젠가 함께 소풍을 갈 때도, 김밥 대신 그걸 해올 수 없냐고 요청했던 기억이 났다.


너희 집에서 그걸 처음 먹어 봤는데, 정말 맛있었어. 남편도 너무 맛있었다고,  며칠 후에 집에서 해 달라고 해서 만들어 봤는데 그 맛이 안나더라고. 그건 너만 맛 낼 수 있는 김치김밥이야.

 

 특별하다 생각지 않은 내 요리가, 아니 요리랄 것도 없이 간단한 김치 김밥이 누군가의 기억에 남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생각해보니 나의 시그니처 음식은 꼭 하나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누구와 어떤 추억을 공유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아들이 꼽은 음식은 '배추 된장국', 남편이 꼽은 나의 시그니처 음식은 '무나물'이었다. 따지고 보면 각자에게 기억되는 나의 시그니처 음식이 실은 본인들이 좋아해서 내가 자주 해 준 음식, 자신들이 정말 맛있게 먹는 음식들이었다.  

 그래도 혹여 내가 세상을 먼저 떠나게 되면, 친한 언니에겐 느끼함 딱 잡아주는 매콤한 누드 김치김밥이, 아들에겐 꼬리한 냄새 폴폴 풍기던 배추 된장국이, 남편에겐 국물채 떠먹을 수 있는 물컹물컹 무나물이 추억으로 남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아버지를 생각하면 김치 김밥만 봐도 슬픈 것처럼, 내 시그니처 음식은 한동안 눈물의 아이템이 되기도 하겠지.


 아버지가 너무너무 그리워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날 밤. 집에 있던 김과 김치를 꺼내어 김치 김밥을 만들었다. 꽉꽉 눌러 만들어야 그 맛이 날 텐데, 나에겐 아버지의 그 손 힘도,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돌김도 있지 않았다. 그저 기억을 더듬어 아버지가 하신 그대로 김치 김밥을 만들었을 뿐.

 김치 김밥을 썰어 예쁘게 담고, 소주도 한 잔 부었다. 가만 김치 김밥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소주를 한 잔 마시고 나서 김치 김밥을 입에 넣었다. 찹찹 씹는데, 눈물 콧물이 입으로 줄줄 흘러 들어가 김치 김밥에서 눈물 맛이 났다. 세상 맛있던 그 김치 김밥이 아니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딱 그런 맛이어야 하는데.

 세상 젤로 맛있던 아빠표 김치 김밥을 다시는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이 현실로 와닿았다. 한동안은 김치김밥을 먹지 못할 거 같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치고 팔짝 뛰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