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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안녕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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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Dec 15. 2022

영화 아바타를 보다가 아빠 생각.

마흔넷_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하여.

 


 아들이 독감에서 해방된 기념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아들은, 파란색 몸의 아바타가 무섭다면서도 친구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 친구들보다 더 빨리 영화를 본다는 것에 이미 만족감 100퍼센트였다. ^^

 아바타 물의 길은 전작보다 몇 배쯤 화려한 영상미를 자랑했다. 주인공 제이크 설리와 네이리티의 전투력은 말해 무엇. 어쩜 그리 멋있는지. 긴 영화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인간의 창의력과 기술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생각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다가 눈물이 핑 돌기도 했는데, 다름 아닌 아버지 때문이었다. 설리 가족의 위대한 가족애는 바로 아버지 설리의 강인함에서 기인한다. 다른 얘기는 스포가 될 것 같아 생략하고, 설리가  '아버지는 지킨다, 그것이 존재의 이유'라고 말하는데 그 대사가 가슴에 콱 박히더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아버지, 나의 아버지도 그리하였다. 가진 거라곤 몸 밖에 없었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하고, 아이 셋을 낳고 자신의 패밀리를 지키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트럭 운전, 농사, 목수... 칠순이 넘어서도, 온 가족이 만려를 해도, 힘이 있는 한 조금이라도 벌고 싶다며 일을 하러 나가셨다. 암이 걸린 줄도 모르고, 돌아가시기 3개월 전까지 고된 노동을 하였으니 아버지로선 최선을 다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금수저가 아니고서야 빚 없이 한평생을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겠더라. 흙수저 중에서도 지독한 흙수저로 태어나 갖은 고생을 한 부모님이 우리 삼 남매를 얼마나 힘들게 키워왔는지, 얼마나 최선을 다해 그들의 인생을 사셨는지 빚이 없는 노년을 준비한 당신들의 인생이 그것을 증명하였다.  안타깝게도 이제 그만 고생하고 평온한 노년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때에 아버지는 마치 제 몫을 다 한 사람처럼 그렇게 하늘나라로 소풍을 떠나버리셨지만. 그렇기에 언제나 강인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면 나는 바로 나의 아버지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아바타 설리만큼이나 가족애가 강하고, 강인하고, 못하는 게 없던 멋진 아버지였다. 


 우리는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존재를 일컬을 때 아바타라는 단어를 쓰곤 한다. 그래서 가끔은 자식을 자신의 분신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마음대로 마치 아바타를 움직이듯 자녀를 조정하려 한다. 주변에 고학년인 자식을 아직도 자기가 정해놓은 스케줄대로, 자기의 방식과 뜻대로 쉬는 시간 하나하나 컨트롤하며 살게 하는 사람이 있어 경악했던 적이 있다. 

 아바타 영화를 보고 배울 점은 그런 게 아니다. 자식은 나의 아바타가 아니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버스를 기다리며 아들을 가만 바라보았다. 나는 설리, 네이리티 같은 부모인가. 적어도 '도망치는 것으론 가족을 지킬 수 없다'는 설리의 깨달음을 이미 현실의 나는 느끼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가난과, 희귀병과 거짓이 뒤섞인 생활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아이의 옆을 지켰다. 강인한 엄마가 아니라 때때로 자신을 괴롭히며 못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 나 역시 내 몫을 다 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 거라고. 판타지 세상 속에서도 가득 차고 넘치던 가족애를 현실에서 못 이룰까. 아바타의 설리와 네이리티가 그랬듯,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 최선을 다해 이 아이를 지키고, 책임지고,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딜 가더라도 가족이 너의 요새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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