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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안녕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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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 Oct 24. 2022

미치고 팔짝 뛰겠습니다.

마흔 넷_단어의 뜻을 제대로 알아가는 나이

 작년 늦가을,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8월 초 폐에 전이된 췌장암 4기 판정을 받고, 3번의 항암을 마치지 못한 채였다. 고통스러운 항암은 암의 크기를 줄여놓긴 했지만, 이유모를 호흡곤란으로 아버지는 한 달을 먹지도, 제대로 숨을 쉬지도, 제대로 잠들지도 못한 채 고통스럽게 말라갔다.


 병원에서 임종 준비를 하라는 이야길 듣고, 언니와 함께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준비하고, 납골당을 알아보러 다니면서도 우리 둘은 울지 않았다. 그저 모두가 처음 겪는 이 일들을 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코비드 19 때문에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한 채, 우리 가족은 병원 밖 커피숍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엄마 혼자 아빠 옆을 지켜야 했는데, 작은 병실에서 가쁜 호흡을 내쉬며 엄마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바라보던 아빠는, 엄마에게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늦가을 저녁, 하늘로 가셨다.


 아버지의 사망 선고를 받고,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위해 하나님께 부탁하는 엄마의 애달픈 기도를 들으면서도 나는 울지 않았다. '애달프다'라는 말이 무엇인가, 생각하면 나는 그날 엄마의 기도가 떠오른다.

 '믿을 수가 없다', '믿기지가 않는다'는 말도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빠의 죽음이 믿을 수가 없어서 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아빠의 장례식을 잘 치러내야 한다고, 가족 중 정신 바짝 차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그게 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시어머니가 그러셨다.


 "어머, 너는 어쩜 울지도 않니"


 조문객들도 예상 밖의 멀쩡한 내 얼굴을 보고, '다행히다'는 반응과 '안 울고 있네? (어쩜 그럴 수 있니?)' 반반의 표정으로 내게 인사했다. 그렇게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누군가 울면 폭풍 오열이 될 것 같은 생각에 가족 모두 꾹꾹 눈물을 참았다. 물론, 아버지가 천국에 가셨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덜 슬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장례식 이후 우리 집으로 돌아온 후부터 단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는데, 새 해가 되고도 하루도 빠짐없이 아빠 생각이 나서 울곤 했다. 아빠의 행동, 표정, 목소리까지 바로 앞에 있는 듯 생생했다. 그런 아빠가 없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달리기를 하면서도 매일 꼬박 운동하며 건강관리하셨던 아빠 생각에 울고, 매콤한 고추를 먹다가도 매운 것 좋아하셔서 콧등에 땀이 날 만큼 매운 걸 드시던 아빠 생각에 울었다. 날씨가 더우면 집 짓는 일을 하며 더운 날 소금이 되어 오던 아빠 생각이 나 울었고 어떤 날에는 공원 산책을 하다가 미친년 저리 가라 엉엉 목놓아 울기도 했다. 왜 상을 치를 때 옛날 사람들이 '아이고아이고~'하고 곡소리를 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빠의 죽음이 너무 안타깝고 안타까워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났다.  아빠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미치고 팔짝 뛰겠다.




 글로만 배웠던 말과 단어들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뜻을 오감으로 체험하게 된다.

 임영웅 콘서트를 보고 온 어머니들은 '얼굴 뒤로 후광이 비친다'는 말이 무엇인지 체감했다고 한다.


 남편이 건강검진에서 초기 암이 발견이 되어 몇 천만 원의 진단금이 나오자 보험설계사를 하던 시누이가 자기가 들어준 보험이라며 진단금을 내놓으라고 몇 번을 찾아와 진상을 피웠다던 친구는 '진절머리 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체감했고.


 아이 엄마가 된 사람들 중에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다쳤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체감했을 것이다. 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이란 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을 것이고...

 살면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가슴이 답답하다'라는 게 무엇인지. 사별한 사람들은 '사무치게 그립다'를, 가족이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 '안절부절'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체감했을 것이다.


 마흔넷이 되어 돌이켜 보니, 그게 그렇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체감하며 알게 되는 말들이 늘어난다.

 앞으로 또 어떤 말과 단어들을 체감으로 알게 될지 모르겠지만, '치가 떨린다'던가, '뼈에 사무치다'같은 말들은 글로만 알았으면 좋겠다. '쫄딱 망한다'는 게 어떤 건지도 전혀 체감할 필요가 없고, '풍비박산'이라든가,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도 전혀 체감하고 싶지 않다.

 나쁜 말과 단어들은 그저 국어사전에서 배우는 그대로만 알고 싶다. 좋은 말과 글만 오롯이 체감하며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


 아빠가 '사무치게' 그리워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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