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산 남자
내가 버린 수건들이 전부 세탁되어 정리돼 있었다.
그 사이에, 핏자국 하나.
이건 내가 묻힌 게 아니다.
화장실 문 앞에서 발자국이 멈췄다.
문 너머의 기척.
"영실 씨?"
숨이 막혔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목소리.
"무슨 일 있어요?"
"네? 아, 잠시만요."
목소리가 생각보다 잘 나왔다. 아직은.
거울을 봤다. 입술을 손끝으로 눌러 다시 한번 정리했다.
"금방 나갈게요."
조용하다.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심호흡 한번.
달칵.
문을 열자, 그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괜찮아요?"
"네. 입술이 좀 번져서 거울 잠깐 봤어요."
웃었다. 들키지 않게.
상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손을 잠깐 내려다봤다.
"... 손은 안 씻으셨어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네?"
"손에 물기가 안 보여서요."
웃으며 그의 팔짱을 꼈다. 일부러 몸을 붙였다.
"저희 아까 입술만 진했잖아요."
억지웃음을 짓느라 떨려오는 눈꼬리를 진정시켰다.
상한의 시선이 한 번 더, 느리게 따라왔다. 그를 이끌 듯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와인잔을 들었다. 손이 떨리지 않게.
문득,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낮에 호수에서 의사가 건네준 음료. 그걸 아는 듯한 말투. 그리고 레스토랑에 갑자기 나타난 상한.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잔을 내려놓았다.
"상한 씨 아까, 레스토랑에선 브런치 드시고 계셨던 거예요?"
"그건 왜요?"
"우연이 반복되면 인연이라잖아요."
그가 웃었다. 얇고, 느린 웃음.
"영실 씨."
잔을 들다 만 그가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저희는... 매일 매 순간 인연이네요."
입술 사이로 조금씩 새어 나오는 웃음 때문에 마지막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네? 뭐라고요?"
그가 고개를 들며 와인을 넘겼다. 눈을 감은 채로 잔이 비어갈 때까지.
"아니에요, 영실 씨."
등 뒤가 서늘해졌다.
집에 간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뭔가가 달라질 것 같아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몇 차례 타이밍을 재다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만 일어나야겠어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래다 드릴게요."
그 말이 떨어지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괜찮다. 엘리베이터만 타면 된다. 문만 나서면 끝이다.
"아니에요. 엘리베이터만 타면 바로인걸요."
"네. 알아요."
그가 몸을 일으켰다.
엘리베이터 안, 밀폐된 공기가 목을 조였다.
3층에서 7층.
숫자가 올라갈수록 숨이 가빠졌다.
띵동.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문 앞까지 열 걸음.
열.
아홉.
여덟.
일곱.
셋.
둘.
하나.
현관 앞에 멈췄다.
"고마워요. 이제 들어갈게요."
상한은 잠시 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돌아서서 걷는 뒷모습을 확인하고 도어락에 손을 올렸다.
띠띠띠띠띠.
문이 열렸다.
"근데 영실 씨."
몸이 굳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정말 손 안 씻으셨어요?"
무표정한 얼굴.
확장되어 비어 있는 동공.
살짝 올라간 입꼬리.
복도 끝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였다.
"상한."
상한의 시선이 잠깐, 아주 잠깐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