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산 남자
집 근처 와인바는 생각보다 근사했다. 조명은 낮고, 음악은 끈적했다. 나에게 쏠리는 시선은 언제나 짜릿하다. 그들은 나를 보고, 내 옆에 선 남자까지 으쓱하게 만든다.
"시간 내주셔서 고마워요, 영실 씨."
"여기 좋네요. 고마워요, 저도."
"저... 함부로 마시지 마세요."
"뭘요?"
"낯선 사람이 주는 음료 같은 거요."
낮에 호수에서 건네받았던 음료, 레스토랑의 난장판이 스쳤다. 멍청한 윤부남. 그 꼴을 보고도 시간을 묻던 의사.
"그럼 상한 씨가 주는 것만 마셔야겠네요? 낯설지 않으니까."
테이블에 놓인 상한의 와인잔에 살짝 잔을 부딪히며 눈웃음을 흘려줬다. 상한의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숙였다. 이웃으로 마주쳤을 때랑은 다르게 나름 재미는 있다. 와인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그를 잘못 봤던 건지.
오피스텔에 도착하자 상한은 다시 쭈뼛거렸다.
"드... 들어가셔야죠?"
"들어가야죠."
"아, 그렇죠."
말을 더 잇지 못한 채 어리숙하게 웃는다.
"상한 씨네로 들어갈까요?"
"네?"
"집도 구경하고, 2차도 하고."
상한의 팔을 감으며 몸을 붙이자, 그의 숨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집은 사람 사는 냄새가 없을 만큼 깔끔했다. 소파에 앉아, 그가 꺼내온 와인잔을 들었다.
맞은편 벽. 혼자 사는 집에 TV 크기 만한 가족사진. 부모님, 상한, 그리고 남자 하나 더. 형인지 동생인지.
"화목한 가정이시네요."
상한이 멋쩍게 웃었다.
"참, 인터뷰 봤어요. 사업 그렇게 키운 거 대단하세요."
칭찬은 온전한 이성을 가장 빨리 무너뜨린다. 상한의 얼굴이 다시 물들었다. 여자의 본능도 순진한 남자에게 끌린다.
오늘의 노력에 보상을 좀 줘볼까.
잔을 내려놓고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상한 씨, 나 궁금하죠."
"네? 네. 많이요..."
"저도요."
상한의 손에서 잔을 뺏어 내가 대신 마셨다. 달아오른 그의 시선에 눈을 살짝 감아줬다. 차가운 입술이 조심스럽게 닿았다.
내 반응에 안심하며, 거칠고 뜨거운 숨이 틈을 헤집었다. 손이 목선을 따라 미끄러졌다. 머뭇거리던 손끝이 조금 더 아래로 향한다.
내가 준비한 당근은 여기까지.
"상한 씨, 저 물 좀 줄래요?"
몸을 살짝 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욕구는 모자랄 때 붙잡힌다. 사랑은 욕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채워질수록 비워지고, 비워지면 시련이 된다.
그 시련은 외로움을 만들고, 외로움은 다시 새로운 욕구를 불러낸다.
사랑? 아니, 내가 하는 건 사랑 흉내.
그들은 날 사랑해도, 난 마음을 채울 생각은 없다. 대신 다른 걸 채워주고, 그들은 그걸 사랑이라 부른다.
내 방식대로 사랑할 뿐.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이 밥을 먹을 때도, 각자의 그릇이 있듯이.
같이 먹는 혼밥. 그게 내 사랑의 모양이다.
"잠시만요, 물 가져올게요."
"저 잠깐 화장실 좀."
거울 앞에서 번진 립을 고쳐 발랐다. 화장실은 또 왜 이렇게 광이 나? 모든 게 지나치게 반듯했다. 이 남자 뭐야.
그때 시야에 들어온 수건 하나.
... 어?
내 수건이다. 며칠 전 버린.
수건장을 열었다. 내가 버린 수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전부 세탁된 채로. 정돈이 지나치게 완벽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남아 있는 핏자국.
이건 내가 묻힌 게 아니다.
화장실 문 앞에서, 발자국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