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와이프, 그리고 영실

그녀를 산 남자

by 밤얼음

"영실아!"


윤부남.

작년쯤, 들켜서 관계를 정리한 남자.

걷다가도 뛰다가도, 사람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간다.


"영실이 더 예뻐졌네... 목 마르지? 이것 좀 마셔."


네가 물을 왜 주니. 내가 네거나 받아 마시려고 텀블러를 두고 온 게 아닌데.


약간의 땀은 나를 더 야릇하게 만들고, 살짝 거친 숨은 그들을 더 황홀하게 만든다.


나는 언제나 계산된 속도로 달린다. 느리게, 천천히, 고의 아닌 고의로. 모든 움직임은 전략이다.


머리를 다시 묶으려 멈춘 순간, 누군가의 팔이 스윽 시야를 가르며 음료를 내밀었다.


"새 거예요. 혹시 목마르실까 봐."


고개를 돌렸다. 즐거운 스캔 시간.

1초, 키 훤칠.

2초, 피부 구릿빛.

3초, 얼굴 무난.

4초, 눈 사이코랑은 먼 관상.

5초, 시계 가격 미쳤음.

그의 손목이 반짝인다.


"고마워요."

"저는 여기 아파트 살아요. 명함 드릴게요."


명함을 들이미는 손에는 자신감이 실려있었다. 역시나. 피부과 원장. 남자의 돈과 명예는 언제나 정직하다.


"오늘 저녁에 와인 하실래요?"


오늘은 왜 이렇게 와인이 쏟아지니. 첫 만남에 와인은 취향이 아닌데.


"저녁은 선약이 있고, 브런치 어때요?"


호수를 내려다보는 레스토랑. 테이블에는 그가 고른 음식이 넘칠 만큼 쌓였다. 그의 말은 가벼웠지만, 그 속의 의도는 지나치게 선명했다.


"돈은 써야 돌아온다죠? 이렇게 예쁜 분과 쓰면 더 가치 있고요."


나는 안다. 그는 마음을 사려는 게 아니라는 걸. 남자는 늘 같은 곳을 본다. 마음보다 몸을 보고, 해보다 달을 원한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숨이 트였다.


"영실아."


또 윤부남.

아까의 폭풍이 다시 몰려왔다.


"아까 와이프 때문에 놀랐지? 지금 화장실 갔어. 얼른 번호 찍어줘."


사람이 못 버리는 건 습관일까, 집착일까.


"오빠, 오빠한테 중요한 게 있잖아? 그거나 잘 지켜. 귀찮게 하지 말고."


돌아서려던 찰나, 뒷머리가 확 잡혔다.


"너였구나!"


세상이 기울고, 통증이 번쩍했다. 비명 대신 이를 악물었다. 그때, 단단한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뭐 하는 겁니까?"


3층 남자, 상한.

... 얘가 왜 여기 있어?


"남의 여자 머리끄덩이 잡는 게 정상입니까?"


잔잔한 얼굴에서 나온 한마디가 불씨가 됐다. 윤부남이 달려들었다.


"남의 여자? 네가 영실이 남자냐?!"


상한은 동도 없었다.


"아직은 아니죠."


상한의 말에, 윤부남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선언을 내뱉었다.


"영실이는 내 여자야!!!"


정적.

1초.

와이프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윤부남, 이 미친 인간..."


그때, 의사가 돌아왔다.


"영실 씨, 이쪽으로 오세요."

"넌 또 뭐야! 영실이 또 다른 남자냐?!"


윤부남은 망가진 자존심 위를 구르며 발악했다.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은 점심만 먹었죠."

"뭐어어어?!"


ㅡ 철썩!

와이프의 손바닥이 윤부남의 뺨을 갈랐다. 윤부남이 상한을 밀치고, 상한이 윤부남을 밀치고, 윤부남이 균형을 잃으며 의사까지 들이받았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유리 깨지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


사람은 사랑보다 분노에 더 솔직하다.


그들을 지켜보던 와이프가 나에게 다가왔다.


"남자가 대체 몇 명이니? 젊음을 그런 식으로 팔고 싶디?"


분노보다 더 본능적인 건, 자기 것을 지키려는 욕망이다.


사람은 왜 그럴까. 자기 손에 있을 땐 쉬운 사랑이, 빼앗기는 순간에야 욕심이 된다.


소유욕은 위태로울 때 가장 화려하다.


"저기요. 전 아무것도 판 적 없어요."

"뭐?"


"그들이 날 가지려 했을 뿐이죠."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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