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지루해.
침대는 이미 식었다.
이곳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다.
맞출 마음? 없다.
"좀만 있다 가자, 영실아."
"안 돼, 바빠."
몸을 일으키자 그가 등을 끌어안았다. 연인이라고 믿어버린 손길. 척추를 타고 느리게 미끄러지는 감각. 목덜미에 닿는 숨.
오늘 내가 선택한 남자. 낯선 숨결. 낯선 팔. 그리고 더는 가까워질 생각 없는 내 심장 박동.
"요즘 연락도 잘 안 되고... 다른 놈 생긴 거야?"
"그런 말 할 거면, 그만 만나."
딱 이 정도가 좋다. 이 거리. 이 온도. 그 이상은 필요 없다. 그들은 다르겠지만.
"난 오빠가 좋아."
일부러, 한 박자. 남자들은 대개 거기서 흔들린다.
"그러니까 자꾸 보채지 마. 피곤해져."
"너는 진짜... 그래, 미안해."
짧은 한숨을 흘리고, 곧바로 분위기를 돌리려는 그의 목소리.
"신상 들어왔대. 주말에 쇼핑 갈까?"
대답 대신 이불을 걷어냈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시선이 내 실루엣을 훑는다.
그래.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둬라.
곧 보지도 못할 테니까.
그러게 왜, 다른 남자 있냐는 쓸데없는 말은 했을까.
샤워기 물을 틀었다. 뜨거운 물줄기가 어깨를 타고 떨어졌다. 방금 전의 열기는 빠르게 씻겨 내려갔다.
끝나고 난 뒤 씻어내면 되는 일. 내가 하는 사랑의 방식.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단 하나만 빼고.
"오늘 평소랑 좀 다르네."
"이리 와봐, 오빠. "
오늘의 남자를 끌어안고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의 숨이 바로 느려진다. 역시 쉽다.
며칠 전, 복도 끝.
잠깐 스쳤던 그 남자.
딱 5초.
평소에 쓰던 판단의 5초와는 달랐다.
상한의 가족사진 속, 상한 옆에 서 있던 남자와 닮아 있었다.
형이라던데.
글쎄.
오늘도 주차장에는 상한의 차가 없다. 며칠째 비어 있는 자리.
보이지 않을수록 이상하게 또렷해진다.
상한. 아니, 그 남자.
띵동.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현관 앞에 서 있는 남자.
윤부남.
"영실아!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뭐야?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았어?"
"너 몰래 따라왔었지. 그때 호수 그놈이랑 올라가더라? 살림이라도 차렸어?"
와이프 말이 맞았다. 정신 나간 인간.
"유부남인 거 속여서 아직 화나서 그래?"
잠깐의 침묵.
"이혼이라도 할까?"
"오빠, 진짜 미친 거야?"
"할게. 이혼. 몇 달만 기다려줘."
하.
내가 유부남이나 만나려고 이렇게까지 관리하며 살아온 줄 아나. 누굴 싸구려로 보는 거야.
뒤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윤부남... 당신."
기가 막히게도 와이프까지 등장했다. 호수에서의 난장판이 겹쳐 보였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걸어왔다.
시선이 나에게 꽂힌다.
아니, 잠깐만. 이게 아닌데.
그때였다.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번엔 아주 천천히.
익숙한 얼굴 둘.
상한.
그리고 그 남자.
왜 하필 지금이야.
그 순간,
[찰싹]
인생 진짜 더럽게 꼬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