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하루를 돌려드릴게요
처음으로 창문을 닦지 않았다. 오늘은 흐릿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문이 열렸다. 종소리는 평소와 같았지만 공기가 먼저 가라앉았다.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는 의자에 앉아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더라고요."
"잘 오셨어요."
그녀의 시선이 찻잔으로 내려앉았다. 잔 위에 띄운 꽃잎이 물속에서도 형태를 잃지 않고 있었다.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마음처럼, 오래도록 가라앉지 않는 기억처럼.
"제 사랑은... 좋은 사랑이었을까요. 아니면 나쁜 사랑이었을까요."
잠시 침묵.
"진흙밭에도 눈이 내리면 하얘지니까."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제가 조금만 더 참았으면... 제 사랑은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었을까요."
그녀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반지가 힘없이 빛났다.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 순간, 손등과 팔목에 시커먼 멍자국들이 눈에 들어왔다.
빛이 열렸다.
늘 보던 빛과는 달랐다.
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잿빛의 빛.
그녀를 감싸던 빛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이 하루는 돌아가서는 안 되는 하루였다는 걸.
그리고 만약 알았다 한들, 선택은 달라졌을까.
*
거실 베란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겁에 질린 채 웅크린 그녀의 모습.
"내가 빨리 들어오라 했지."
"오늘 업무가 많아서... 미안해."
"그지 같은 회사 다니면서 삼십 분이나 나를 기다리게 해?"
"미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목이 잡혔다.
"아파... 하지 마."
"넌 말로 해서는 안 된다니까?"
그녀가 벽 쪽으로 밀렸다. 등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숨이 짧게 터져 나왔다. 이어 머리채가 잡혔다. 고개가 강제로 들렸다.
"딴짓하다 들어왔지?"
"제발... 그만 좀 해. 나 남자 번호도 없는 거 잘 알잖아."
"죽고 싶지 않으면 사실대로 말해."
"...나는 네 전여친이랑 다르다니까. 4년을 만났는데도 아직도 모르겠어?"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늘 죽어보자."
입안에서 피 맛이 퍼졌다.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지옥.
살기 위한 몸부림은 남자의 광기 앞에서 점점 힘을 잃어갔다.
결국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못할 즈음, 엎드린 채로 그녀는 겨우 소리를 냈다.
살기 위해서.
"...내가 잘못했어.
화나게 해서 미안해."
남자의 손과 발이 멈췄다.
"계속 말해봐."
"내가 더 잘할게. 사랑해. 진짜야."
그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그 손길에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움찔했다.
"많이 아파? 못 걷겠어?"
아까와는 다른 얼굴. 조금 전까지의 사람이 아닌 것처럼.
"업어줄게."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가 덧붙였다.
"그러니까, 자꾸 내가 이렇게까지 되게 하지 마."
비가 창을 뚫고 들어올 것처럼 더 세차게 내렸다.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앉히고 방에서 작은 상자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끼워주었다.
조금 전까지도 그녀가 매만지고 있던, 그 반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