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하루를 돌려드릴게요
"왜 이렇게 늦었어?"
그녀의 집 문을 열자마자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날아왔다.
"미안."
나는 습관처럼 말했다. 몇 년 만에 다시 보는 얼굴 앞에서 뛰는 가슴을 간신히 눌렀다.
"커피 사 왔어?"
바닐라라떼 두 잔이 든 캐리어를 식탁 위에 올렸다.
"짜증 나게, 왜 두 잔이야?"
"나도 요즘 바닐라라떼 마셔서..."
"내가 바닐라 먹다 물리면 아메리카노 먹는 거 몰라? 맨날 오빠 건 아메리카노 사 오더니, 뭐 하자는 거야."
늘 그랬다. 커피든, 메뉴든, 나는 그녀가 원하는 쪽을 골랐다. 그녀가 원하는 게 내가 원하는 거였으니까.
"미안해. 아메리카노 금방 사 올게."
의자에 걸어둔 코트를 집어 든 순간, 그녀가 다가와 허리를 끌어안았다.
"오늘만 특별히 봐줄게."
나를 다루는 법을 아는 그녀. 그녀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녹아내렸다. 코트를 내려두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 너무 오래 그리워했던 체온, 익숙한 향기. 허공을 떠돌던 몸이 다시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헤어진 뒤 한동안 메말라 있던 입술이 포개졌다. 틈 사이로 따뜻한 숨이 스며들었다. 참아왔던 호흡이 짧게 새어 나왔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내 셔츠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오빠, 오늘 왜 이렇게 긴장해? 귀엽네."
웃으며 던진 말. 그 말투가, 그 온도가 나를 더 깊이 끌어당겼다.
"보고 싶었어."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앙칼지게 날을 세우던 그녀의 이마가 내 어깨에 닿았다.
나는 왜 그녀의 품 안에서만 숨이 쉬어질까. 불안과 안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지옥 같은 안락함이었다.
잠시 후,
욕실 문이 닫히고 그녀의 휴대폰에 알림이 울렸다. 볼 생각은 없었다. 안 봐도 알 것 같으니까. 하지만 미리 보기 창에 떠버린 문장은 나를 비웃었다.
[오늘 그 호텔 잡았어. 저번에 거기 바 좋다며. 7시까지 데리러 갈게.]
또 다른 남자였다. 수건을 두른 그녀가 나왔다.
"오빠, 빨리 씻고 가. 나 엄마랑 저녁 약속 있어."
그녀를 다시 안아보았다. 낯간지럽게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은 솔직했지만, 나는 끝내 그만큼 솔직해지지 못했다. 한 방울로 멈췄다.
내가 속아주고 있다는 걸 그녀가 몰랐으면 했다. 한 방울이면 충분했다. 그 정도여야, 아직 내가 무너지지 않은 것 같으니까.
너는 뭐가 그렇게 외로운 걸까.
그래도 너 없는 세상보다 너 있는 지옥이 내가 숨 쉬는 쪽이더라. 병신 같아도, 나한테는 이게 사랑이다.
"그래... 맛있는 거 먹고 와."
세상이 흔들렸다.
하루의 문은 닫혔다.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앉아 있던 의자엔 커피의 향만이 남아 있었다.
바닐라의 단내가 끝내 사라지지 않은 채로.
그는 그녀를 버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