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건너온 하루

당신의 하루를 돌려드릴게요

by 밤얼음

낮은 겨울 햇살이 카페 안으로 밀려들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밤 사이 눅눅해진 공기를 내보내려고.


길 건너편, 햇빛이 가장 먼저 닿는 자리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손에 쥔 건 라이터였다. 아주 작은 물건. 그 남자는 그걸 너무 오래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의 손이 떨렸다. 멈춰 있던 엄지가 서서히 올라갔다.


갑자기 가슴이 조여왔다. 공기가 뜨거워지며 목 안쪽이 타들어갔다. 시야가 흔들렸다.

연기.

타는 냄새.

등에 닿던 열기.

과거의 끔찍한 감각들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대로 카페를 뛰쳐나갔다.


"안 돼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남자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의 손을 붙잡았다.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며, 남자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카페 안은 조용했다.


그의 앞에 말없이 따뜻한 차를 내놓았다. 잔 위로 분홍 꽃잎이 흘렀다.


창밖에는 사람들이 웃으며 지나갔다. 시선을 내린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제가 진짜... 열심히 살았습니다. 야근도, 주말도... 다 바쳤는데. 그런데도 회사에서는 그냥 나가라네요.

사람을 무슨 벌레만도 못한 취급 하면서.

받아야 할 돈도 남았는데, 법대로 하랍니다.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눈을 문지르던 그의 손이 멈췄다.


"아내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길이 안 보이네요."


남자는 고개를 떨궜다. 무릎 위에 올려둔 두 손이 가만히 겹쳐졌다. 그렇게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좀 다르게 살 수 있을까요."


그때 남자의 가방에서 작은 도시락 통이 굴러 떨어졌다. 뒤이어 종이 한 장이 바닥에 닿았다. 그는 종이를 주워 펼쳤다.


잠시 읽고, 굳어 있던 입술이 금씩 풀어졌다. 그리고 곧, 다시 울었다.


"돌아가면... 이 사람을 못 만날 수도 있겠죠."


아내의 편지.


도시락 안에는 오늘 먹지 못한 점심과, 전하지 못했던 아침의 말이 함께 들어 있었다.


"아까 제가 하려던 선택을... 하지 않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테이블 위에 그가 두고 간 라이터. 라이터의 금속이 잠깐, 불빛처럼 번들거렸다.


가슴 어딘가가 저려왔다. 집어 들자 차가움이 뜨거움으로 바뀌어 온몸에 퍼졌다.


그 순간.


"미래야."


어디선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뜨거운 재가 온몸을 덮다.


숨이 막혔다.


"괜찮아! 나 여기 있어."


등이 따뜻해졌다. 사람의 체온처럼.


아주 오래전, 큰 화재가 있었다. 나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대신 모든 기억이 사라졌다.


한 사람의 얼굴, 이름, 목소리까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지금 나는 왜 이렇게 울고 있는 걸까.


기억은 없지만, 심장은 아직 그 사람을 기억한다.


당신이 혹시...

내가 돌아가야 하는 하루일까.


이전 04화그의 지옥은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