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운명을 사랑하자(Amor F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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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안에서의 몸부림
바다 안에서는 바다의 법을 따라야 하는 법, 움틀러리는 자아를 찾고자 들어간 심연 안에서 유영하는 방법은 사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막연히 떠올려왔던 유연한 움직임은 거녕 밤새 두 다리를 모아 움틀거리는 몸사위가 처연해보일 정도였다. 더불어 그 곳에서 경험한 압력은 태어나서 경험해보지 못할 정도로 구역질이 올라오고, 지겨운 두통을 유발했다.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서 물어와야 했다. 어떻게 하면 조금 수월하게 호흡하고, 헤엄치고, 유일한 언어로 말할 수 있는지 말이다. 처음 만났던 불가사리는 나이가 지그시 들었지만, 세련된 주황빛깔에 다섯개의 팔에는 은빛 장식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듣고 헤아릴 줄 알으며, 분명히 배울만한 지점이 선명히 있어 보였다.
그 안에는 이전에 소녀가 신탁 낭송회를 했던 신전의 수신자도 함께하고 있었다. 신탁의 수신자는 소녀가 이 곳까지 올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 이후에 그가 소녀가 심연 안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듯 보였다. 그는 심연 안에서 오래도록 살고 있던 또 다른 동료와 함께 자신의 방식대로 행하도록 독려했다. 이 두 사람은 틈이 나면, 어딘가로 가자고 했다. 그 곳에 가면 신탁의 간부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그들은 소녀가 견디고 만들어온 형태가 없는 진주로서의 가능성을 처음 알아봐준 이들이기도 했다. 그 둘의 말을 듣고 따라간다면, 신탁의 간부를 만날 수 있으니 심연 안에서 살아남기 이보다 최선의 방법은 없을 것이다.
소녀가 심연 안에서 적응하기 위해 방법을 물어보던 세번째 날이었다. 그 날 신탁의 수신자가 꺼낸 말들은 소녀가 살아왔던 관념을 완전히 허물어버리는 일이었다. 그가 하는 방식에 언제나 옳다고 대답하고, 그가 그려놓은 계획 안에서 행동하면 되는 문제였다. 그러나 소녀가 원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것이었으며, 그 방법이 심연 안에서 살아남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신탁의 수신자는 이전에 소녀가 만났던 유일하고 특별한 언어를 쓰던 인어에 대해서 언급했다. 자신을 따른다면, 그녀처럼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녀 안에는 어떠한 질문이 떠올랐다. '과연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이 그 인어처럼 아름다운 노랫말을 따라부르는 것이었을지' 그 순간만으로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녀와 닮고 싶어서 심연에 들어왔으면서, 처음부터 마주하게 된 질문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언제나 존재 가치에 대한 깊은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아왔는데, 고독한 투쟁 속에서 건져준 말은 거부하기 어려웠다.
소녀는 심연 안에서 살고 있는 다른 생물에게 찾아가보기로 했다. 이번에 만난 라이트피쉬는 온 몸에 빛을 낼 수 있었다. 원하는 때에 따라 표면에 드러는 빛깔이 달라지는 모습이 시선을 현혹했다. 그는 심연에 들어오기 전에 천해(淺海)에서 이를 배우고 들어왔다고 했다. 이 안에 있는 다른 물고리들과 이질감이 있는 듯 보였지만, 그 만의 특색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했다. 불가사리와 라이트피쉬는 모두 신탁의 수신자가 하는 말을 따르도록 독려했다. 소녀의 의도와 다르게 했던 가지고 있던 마음은 불가사리에 의해 해석되고, 라이트피쉬에 의해 가고자 하는 동선이 노출되었다. 이 모든 것은 신탁의 수신자에게 전달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영하는 방법이 나아질거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다리는 저리고, 점점 목소리를 일어갔으며, 모으고 있던 다리의 표면에는 온갖 진물이 올라왔다. 결국 소녀는 마치 섬뜩한 마녀처럼 보이는 그녀를 찾아갔다. 주변에 있는 존재들은 그녀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녀는 심연에 있는 존재들이 활용할 줄 모르는 마법을 쓸 줄 알았다. 그 마법을 활용하는 대상은 분명하게 효과를 얻고 간다는 것이다. 신탁의 간부와 수신자들은 그 방법을 다른 존재들과 공유하기를 원했고, 나 또한 그 능력을 선망하게 되었다. 그녀는 쉽게 내어두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평소와는 다르게 한껏 침전된 모습으로 동굴에 있는 약품들을 모아 정리하고 있었는 모습을 발견했다. 동굴에서 사용하던 도구들도 나에게 건네주었다. 물건을 건네주던 목사님의 손이 부르터있었다. 소녀는 물었다. “어디로 가세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식사라도 한 끼 드시러 가실래요?” 우리는 식탁에 마주보고 앉았다. 그리고 막 준비한 음식을 먹으려고 한 찰나에 마녀는 갑자기 도착한 편지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열어 읽으녀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려둔 편지 안에는 심연 안에서 더이상 지낼 곳은 없으니, 나가달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부르튼 손으로 만들던 약품을과 도구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상실감에 감정이 짙게 전해졌다.
그러면서 마녀는 소녀보다 조금 일찍 심연에 왔던 작은 인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려주었다. 소녀 역시 존재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지만, 도통 눈에 띄지 않다. 작은 인어는 소녀보다 어린 나이에 심연에 들어왔지만, 목소리를 완전히 잃게 되어 잠시 치료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신탁의 수신자들은 그녀의 치료를 위해서, 반년 가량을 추방하지 않고 재정적 지원을 해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회복하고 있더던 그녀가 자상에 올라갈 정도로 육신을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이 들어나며 심연으로 복귀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대외적으로 신뢰를 잃었으며, 그와 동시에 심연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불성실하고 거짓으로 대응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 조직에서 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으며, 그 뒤에 오게 된 존재가 바로 소녀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이 상황을 풀어나갈 탈출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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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동화
소녀는 꿈에 그렸던 심연에서 지내기를 내려두고 나오기로 결정했다. 사유는 급격한 근육 경련과 체중 감소와 목소리에 생긴 상이한 균열 그리고 깊은 압력으로 떨어져 나간 피부 표피로 인합이었다, 주변에 들리는 말들과 상황으로 인해 결국 소녀가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 집중하지 못하고 멀어지는 것으로 결론지어버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 준비했던 심연에서의 훈련은 기대에 한참을 부응하지 못하는 결말을 짓지 못한 불가능한 동화가 되었다. 신탁의 수신자는 언제 수령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서둘러 절차를 밟아 이 곳에서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심연 안에서 소녀와 함께 가기로 했던 바다뱀 두 마리도 있었다. 한 마리는 소녀가 심연에 왔을 때부터 그만 두고 떠날거라고 말했고, 다른 한 마리는 이 곳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 방법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모른다. 그 바다 뱀은 겨우 움틀거리고 있는 소녀가 재빠르게 유영하고, 구체적인 형태를 가진 언어로 말을 하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온 몸에서 빛을 내고 발광하기를 바랬다. 소녀가 한번이라도 그렇지 않을 때는 자신이 가진 독을 품어냈다. 물론 바다뱀을 따라 이 훈련에 익숙해졌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녀는 더 이상 밥도 먹지 못하고, 근육에는 경련이 일어나 헤엄치지 못하게 되었으며,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피부의 표피가 벗겨져 떨어지고 있었다. 소녀 안에 있는 깊숙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바다뱀은 소녀가 심연에서 곧 떠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또 다시 무리한 훈련 강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심연에 살고 있는 존재들에게도 나의 무능에 대한 사실을 적시하도록 했다. 그 동안 노력했던 시간들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오며, 밤새 우느라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기본적인 생활조자 소화하지 못했다. 소녀가 신탁의 사제에 들어가기 위해 이전부터 참석했던 낭송회에도 가기가 어려워졌다. 신탁의 수신자들이 자신들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명시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녀가 가고자 했던 심연의 사제로서의 길은 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는 점점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던 말수가 줄어들게 되었고, 자꾸 쏟아지는 눈물과 먹먹해진 목이 멍이 든 것처럼 저려왔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심연으로 돌아가 바다뱀이 주었던 훈련에 대한 검사를 확인받는 날이 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생활도 되지 않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사람이 그것들을 해낼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바다뱀은 누구든지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독을 내품으며, 날카로운 이빨로 소녀의 다리를 물었다. 소녀에게 왜 이런 일들이 찾아오는지 지독하게 모욕적이었다. 턱 끝까지 차올라 일렁이던 눈물과 분노가 거대한 포물선으로 요동쳤다.
“당신에 보시기에 내가 헤엄치는 방식, 목소리를 내는 방식, 노래 부르는 방식, 압력을 버텨내는 방식. 모두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어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당신의 아이도 어딘가에서 고된 훈련을 받는 것처럼 이 순간이 그러한 과정일 수 있겠죠. 저도 무엇을 위해서 심연에 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숙한 저에게 독을 품어내고,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거예요.”
결국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아무도 없는 모통이에 울었다. 그 모습을 발견하신 신탁의 수신자는 곧바로 심연에서 나갈 수 있도록 절차를 취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심연 안에 있는 이들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어제 울음을 터트리며 마찰이 있었던 바다뱀에게는 사과를 드리고, 심연에서 보내느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음에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렸다. 심연을 나온 이후에는 각각의 입장에서 여러가지 말들이 나왔다.
천해(淺海)로 나온 이후에는 이전에 마법의 약을 정리하며 미리 나섰던 마녀가 만나자고 했다. 그녀는 아직 심연에 남아있던 작은 인어도 함께 데리고 왔다. 소녀가 나온 자리는 한발 물러나 기회를 찾고 있던 작은 인어의 것으로 대체되었다. 특히, 심연에서 신탁 수신자와의 일부 대화에 대해 꺼낸 것으로 인해, 그 부분이 모든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이 아닌 작은 인어의 방식으로 다시금 시작되는 씨앗이 되게 만들었다.
오랜 기간 몸을 담았던 신탁에서도 정치적 공론화를 통해 어떤 상황들이 있었는지 속속히 꺼내봐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렸다. 소녀는 이전에 신탁에서 공론화를 한 이후에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이 나를 위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표면 안에 가증스러운 위선과 계산이 담게 있었다. 신탁의 수신자는 소녀가 그토록 선망하던 인어와도 예상과는 다르게 무척 친밀해보였다. 인어는 소녀를 위한다고 말은 하지만, 신탁의 수신자가 한 말에 대해서만 사실이라고 여겼다. 소녀는 속상하고 억울한 내용에 대해서 함구하고, 신탁의 수신자에게 사과 편지를 건냈다. 이 심연에서 나왔음에도 바다 속에서는 살아야 하는 애석한 운명을 위함이었다. 소녀는 분명히 미안하다고 말했는데, 정작 그는 소녀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매일 다른 얼굴을 한 고통이 찾아왔다. 소녀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화가 시발점이 되어 일어난 균열로 인해 무너지고 깨진 조각들이 많았을 뿐이다. 내가 가꾸어 온 인생이 전부 깨져서 분명하게 으스러지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주변에 빽빽하게 서 있던 관객들은 떠났다. 사람들의 입과 입, 악의와 질투, 뒤틀린 마음들은 그 들의 본색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인간이 얼마나 가벼운 존재인지, 그들의 혀가 만들어낸 소문은 그가 어떤 욕망을 담아내고 있는지 알게 해주었다. 도와주려고 했던 이들은 분명히 있었다. 속절없이 끌려가는 시간 속에서 정말로 소녀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었다면, 끝까지 소녀에게로 왔을지 모르겠다.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더 이상 내가 할 수는 있는 것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이 만들어 놓은 드라마의 조연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떠났다. 그 후 그가 소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것이다. 소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소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소녀에게 남은 것은 분절된 언어와 파편들, 차단된 시선과 서툰 변신과 같은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