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 오브 투모로우 (2014)
몇 달 전 개봉했던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많은 패러디와 해석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는데, 이는 영화의 높은 완성도가 관객들이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자극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2016년 현재 관객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영화를 접할 수 있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작품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기에 곡성의 경우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내용이나 형식면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고, 곡성과 같이 극장 밖에서 이야기할만한 서사적인 빈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좋은 평가를 얻은 작품이 바로 2014년 개봉한 더그 라이만 감독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입니다.
이 작품은 전쟁영화라는 바탕에 시간여행과 로맨스라는 장식을 더한 잘 만들어진 공산품 같은 작품입니다. 흔히 말하는 예술영화로서의 야심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당시 사회에서 문제 되는 이슈를 다루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전쟁 영화로서 스펙터클 한 장면 연출에 공을 기울인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이 영화는 가진 앞에서 말한 모든 부분을 압도하는 오락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통해 반복되는 상황에서 주인공과 다른 인물 간의 반응 차이로 웃음을 주기도 하고, 반복되는 상황 자체를 이용하여 직전에 관객이 인지한 상황과의 차이에서 재미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또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전쟁터라는 공간에 떨어진 일반 병사들의 혼란스러운 마음과 피로함을 잘 보여주기도 했고요. 이런 익숙한 요소들이 제대로 결합되었기 때문에 상영시간 내내 이야기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반복되는 장면에서도 지루함을 느끼지도 않으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오락영화로서의 재미와 별개로 저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한한 삶을 반복하는 존재가 된 주인공인 케이지(톰 크루즈)는 그 시간 속에서 권태와 허무를 어떻게 극복해낼지가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하고 싶은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그 시간은 의미가 없을 테니까요. 처음에 케이지는 반복되는 상황 자체를 변주하는 것으로 권태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런 노력의 과정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상황을 조금씩 비틀고, 처음 본 동료의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 이름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지냈음에도 그가 가진 권태는 사라지지 않았는데, 경험했던 시간들이 케이지를 스쳐갈 뿐 삶에 일부가 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황 자체가 아닌 본인의 변화가 필수적이지만 오히려 반복되는 시간과 경험의 허무함만을 절실히 느끼게 해줬을 뿐 케이지의 반복되는 경험은 그를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케이지가 변화하는 것은 '왜 이런 삶을 이어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부터였습니다. 그가 가진 경험의 양과 질은 이전과 아무 차이가 없지만 방향을 정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의미를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깨달음은 케이지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반복하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가 그 능력을 잃어버린 브라타스키(에밀리 블런트)와 보낸 시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 협력하는 관계였던 두 사람이 무수히 반복되는 시간을 보내면서, 케이지의 마음에는 그녀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과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거기서 케이지의 목표가 생겨났으니까요. 저에게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오락 영화의 틀을 가지고 있지만 마치 종교나 철학에서 다룰법한 소재까지 이질감 없이 녹여냈다는 점에서 두마리 토끼 모두 잡은 작품으로 기억될 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