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 (2016)
영화배우이자 감독이었던 찰리 채플린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무척이나 굴곡진 삶을 살았음에도 이런 말을 남겼지만 채플린이 아니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현재를 통과하면서 자신만의 비극을 체험해야 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6년 작 '태풍이 지나가고'는 한 가족이 일상생활에서 겪어내야만 하는 인생이라는 거대한 태풍을 그려냈습니다. 등단은 했지만 15년째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하며 흥신소 일로 살아가는 료타(아베 히로시), 료타와의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재혼을 생각하고 있는 료코(마키 요코), 남편과 자식을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본인은 40년간 한 곳에서 떠나지 못했던 료타의 어머니(키키 키린)등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재의 비극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견뎌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들을 화면 밖에서 보면 채플린의 말처럼 희극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영화를 보다 보면 인물의 감정과 무관하게 웃음을 주는 장면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담담하면서도 사실감 있게 그려냈다는 점입니다. 첫 도입부에 료타의 어머니와 료타의 누나가 연하장에 주소를 적는 장면부터 인물들이 식사하는 장면, 심지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조차 각각의 장면들은 영화 속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도 그 행위들이 가지는 일상에서의 에너지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수많은 영화 속에서 식사 장면을 담았지만 그중에 기억나는 장면이 얼마나 적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만으로 사건을 진행시키면서 따듯함과 유머도 잃지 않은 감독의 능력에 놀라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일상에서 겪는 희극과 비극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찾아오는 태풍은 삶에서 피할 수 없는 혼돈의 시작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혼돈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한 발짝 움직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영화 후반부에 몰아친 태풍은 일시적으로 료타와 료코를 결합시키지만 그 후에 둘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아마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료타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전 부인을 감정적으로 완전히 떠나보내고 난 후의 삶은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질 수 있겠죠.
영화 속에서의 계속해서 오는 태풍처럼 그의 삶에서 비극도 형태는 다르지만 반복될 것입니다. 그래도 태풍 이후에 찾아오는 아주 잠깐의 화창한 날씨와 평안함을 즐기기 위해서는 결국 태풍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런 작은 즐거움 밖에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어차피 태풍은 피할 수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