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은 자가 만들어낸 '재미없음'의 지옥

수어사이드 스쿼드 (2016)

by 나이트 아울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CmRih_VtVAs >


올해 초 개봉한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이 흥행과 비평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탓에 저스티스 리그 자체가 위태로졌지만 다행스럽게도 DC에는 속담처럼 백지장이라도 맞들어줄 캐릭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재료를 가지고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을 수 밖에 없는데,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2016년 작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속담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결과물로 관객들을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는 조금만 검색해 보시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칭찬할만한 점이 없다시피 하니 영화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는 나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니까요. 때문에 이번 포스팅에서는 영화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가 아니라 '왜' 재미없는 작품이 되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원작이 있는 작품들은 두 가지 중에 하나의 길로 가게 됩니다. 하나는 반지의 제왕처럼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재현하는 방향입니다. 이 방법은 확고하게 만들어진 기존의 캐릭터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각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내용이 허술해질 수 있다는 위험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올드보이처럼 원작에서는 콘셉트만 가져와서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향입니다. 이 경우는 감독의 능력과 재량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원작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을 줄 수 있고 새로운 이야기가 성공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경우 원작을 재현한 경우보다 더 큰 비난에 시달리게 됩니다. 각각의 선택지는 분명 장점과 위험성이 공존하고 있지만 감독은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을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이 현명했는지는 오직 미래의 관객만이 알 수 있겠죠.



<출처 : http://www.techinsider.io/suicide-squad-trailer-joker-photos-2016-1 >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이다지도 재미없는 영화가 된 가장 큰 원인은 감독이 위에서 언급한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처럼 보입니다. 이미 수많은 코믹스에서 다뤄진 데드샷이나 할리퀸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와도 좋고 아니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3부작처럼 자신만의 캐릭터로 그려내도 괜찮았을 텐데 감독은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고 캐릭터의 겉모습만 원작에서 가져오고, 그 알맹이는 원작과 동떨어진 전혀 엉뚱한 무언가로 채워 넣어 버렸으니까요. 조커를 연기한 배우 중에 최악의 배우로 기억될 위기에 처한 자레드 레토는 고인이 된 히스 레저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조커가 되어버렸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것이 결코 자레드 레토의 무능이나 실수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원작과 비슷한 구석을 가진 할리퀸조차 영화상에서는 입체감이 전혀 없는 인물로 만들어 놓은 것까지 감안하면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 더 큰 책임을 져야하겠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지난 세월 동안 극장에서 졸아본 적은 있어도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기 전까지는 중간에 나가고 싶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후반부에 그렇게 격렬한 액션 장면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괴로울 정도였는데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이 퓨리와 엔드 오브 왓치를 통해 그 실력을 입증한 바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면 더욱 이해할 수 없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선택을 거부해서 실패한 사례 모음'이 있다면 그 첫 번째를 아주 크게, 그것도 오랫동안 장식할만한 작품으로는 기억될 수는 있을 듯싶습니다. 우리가 그저 그런 완성도를 지닌 영화들을 잘 잊어버려도 골든 라즈베리 상을 받거나 별점 한 개짜리 영화들의 제목은 기억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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