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의 팔촌 (2015)
매년 밸런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 혹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개봉합니다. 하지만 막상 극장을 찾으면 작년에 봤던 그 영화와 주연배우 말고는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봤던 장면과 결말의 연속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가진 장르적인 한계인 동시에 한국 상업영화의 기본 공식처럼 사용되는 '웃음 뒤 감동'이 작용하여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매년 찾아오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다른 궤적을 걸으면서 좋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 2015년 제작된 장현상 감독의 작품 '사돈의 팔촌'입니다.
이 영화는 사촌 사이인 태익(장인섭)과 아리(배소은)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1년 365일 볼 수 있는 한국 드라마의 파격적이고(어머니는 내 며느리) 격정적인(김치 싸대기 날리기) 이야기들과 비교하자면 무척이나 점잖고 있을 법한 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극적인 이야기로 관객을 이끌려는 시도처럼 보일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돈의 팔촌은 그와 정반대의 지점으로 향하면서 남녀 사이에 있는 아주 정적인 방법으로 들끓는 사랑의 순간을 잘 잡아냈습니다. 특히 아직 미성숙했던 두 남녀가 처음으로 포옹하는 장면에서는 감정이 육체를 앞지른 모습을, 그 후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한 키스 장면에서는 감정과 육체가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두 장면은 인물의 내면에는 격정이 폭발하고 있음에도 화면에서는 정적인 모습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같은 어려운 연기를, 그것도 감정을 다잡기 어려운 설정임에도 신인에 가까운 두 남녀 주연 배우가 잘 보여준 점도 무척이나 놀라웠고요.
그럼에도 제가 사돈의 팔촌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부분은 태익과 아리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 자체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도식화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은 마치 남녀 주인공이 각자 게임을 하듯이 몇 가지 미션을 마치면 사랑에 빠지게 되고 다시 몇 번의 고난을 겪으면 영화가 끝나는 방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어떻게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알아 가는지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관객을 그 감정의 깊이와 고뇌에 이입할 수 있게 끌어들이면서도, 근친상간이라는 선정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이런 섬세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때문에 사돈의 팔촌은 허다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놓친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진 속성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주연배우만 보고 극장을 찾는 일명 '스타파워의 시대'는 지났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어떤 영화들은 주연 배우가 그다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상영관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의 규모로 개봉하고,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게 됩니다. 사돈의 팔촌도 최종 관객 수가 천명을 좀 넘는 정도로 막을 내렸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이 표현해낸 섬세한 감정의 모습들은 결코 주류 상업영화의 것과 비교해서도 밀리지 않습니다. 화면 안에서, 그리고 화면 밖에서도 가슴 떨리는 감정을 느끼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은 요즘 세상에 한 번쯤 느껴봤을 설레는 순간이 그리워지는 분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그리움을 달래 보는 것도 좋을 듯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