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1990)
영화는 기본적으로 산업과 예술이라는 두 축의 결합으로 완성됩니다. 여기서 비중을 어느 쪽으로 두느냐에 따라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작품과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천명의 관객만 즐길 수 있는 경우로 나뉘는데, 론 언더우드 감독의 1990년 작품인 불가사리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진지함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쪽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갑자기 땅에서 솟은 정체불명의 식인 괴물에 의해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나가고 거기에 대항하여 살아남으려는 처절한 노력을 코미디로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은 영화 외적으로 평가되는 예술로서의 진지함은 없어도 내적으로는 ‘산업’으로서 갖추어야 할 재미를 갖추면서 동시에 비약이나 허점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우선 괴물의 능력과 한계를 장면에 따라 편의적으로 확장 또는 축소시키는 일 없이 최초에 설정한 범위 내에서 끝까지 밀고 나갔고, 사건의 진행을 위한 복선이 되는 부분도 착실히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인물들을 오로지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해 지나치게 바보처럼 그리지도 않으면서도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대항할 정도의 능력은 부여함으로써 두 존재의 대립에 긴장감을 부여했고요. 괴물이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에서 자기 무덤을 파는 것 같은 인물들을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불가사리에서 등장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인간에 대한 예의까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논리학에서 '개연성'이란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확실성의 정도 또는 가능성의 정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허구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라는 매체는 영화의 바탕이 되는 설정이 가능한지 여부(현실성)보다 그 설정을 바탕으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는지가 더 중요한데 이 작품은 현실성은 전혀 없지만 개연성을 마련하기 위한 장치만큼은 위에서 언급한 여러 장치들로 착실히 준비했습니다. 때문에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이미 나타난 괴물과 어떻게 싸울지 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이 부분이 불가사리를 다른 B급 괴수영화와 차별되는 B급 오락영화의 걸작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든 최대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영화의 장점은 모든 영화들이 시나리오 전개상의 비약을 없애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요소들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괴수 영화뿐 아니라 다른 장르의 영화에서 조차 보는 내내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경험을 떠올리자면 영화가 개연성을 갖추는 일은 의외로 어려운 일임에 분명합니다. 특히나 처음부터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고요. 많은 작품들이 흔히 말하는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추구하다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닌 경우로 귀결되는 경우가 있는데, 불가사리처럼 의미는 없어도 개연성을 통해 내적인 단단함으로 재미를 주는 작품이야 말로 새장 밖의 두 마리 새보다 나은 내 손에 잡힌 한 마리 새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