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파우사니아스 : 선생님, 이 추운 겨울에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으십니까?
소크라테스 : 오오, 파우사니아스여. 신들이 인간을 어여삐 여기고 항상 돕는다는 말에 잠시 의심이 들 뻔했는데 마침 신께서 나를 돕게 하려고 자네를 지금 이 시간에 내 집으로 오게 하셨구먼. 잠시 이 깨진 벽돌 좀 잡아주지 않겠나?
파우사니아스 : 네, 이렇게 잡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소크라테스 : 그래그래, 잠시만 그렇게 잡고 있게나. 자... 이제 일이 마무리되었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사람을 돕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자네는 신들의 만찬에 초대받아 마땅한 격을 갖춘 사람이라네. 그런 격조 높은 사람의 도움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깨진 우물 벽을 고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파우사니아스 : 하지만 선생님, 깨진 우물 벽을 이렇게 접착제로 붙여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떨어져 나갈 뿐입니다. 그리고 이 우물을 보니 이미 몇 차례 수리했던 것으로 보이네요. 이런 말씀드리기 그렇지만 선생님의 집은 전체적으로 너무 낡았습니다. 이참에 좀 더 깔끔한 집으로 이사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소크라테스 : 파우사니아스여, 자네는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집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마음이 불편한 것인가?
파우사니아스 : 네, 그렇습니다. 저처럼 선생님의 조언과 격려 덕분에 삶의 방향을 잃지 않고 지내는 아테네 사람들이 크세르크세스 왕이 그리스를 침공할 때 데려온 군사만큼 많은데 선생님은 늘 그들이 가져온 보답을 마다하시면서 이런 곳에 머물고 있으시까요.
소크라테스 : '이런 곳'이라고 함은 낡고 오래돼서 지속적으로 수리를 요하는 집을 말하는 것이지?
파우사니아스 : 네, 맞습니다.
소크라테스 : 하지만 나는 지난 30년간 이 집에서 살아왔고 여태껏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네. 때문에 나에게 이 이상의 집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자네는 이런 내 생각에 대해 동의하기 어려운가?
파우사니아스 : 선생님께서 괜찮다고 하시면야 저야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더 넓은 정원과 더 많은 하인, 더 깨끗한 방이 있는 집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소크라테스 : 파우사니아스여, 단언컨대 내 인생에는 자네가 말한 저택은 필요하지 않다네. 이런 내 확신이 자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는가?
파우사니아스 : 네, 사람이라면 본래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본성인데 선생님께서는 그런 본성과 다른 방향으로 삶을 이어나가고 있으시니까요.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자네가 말한 큰 저택과 많은 하인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겠네. 자네가 말한 그런 집에 사는 것은 세 가지 경우 중에 최소 한 가지는 충족해야만 가능하다네. 아 물론 합법적인 영역 내에서 한정지 었을 경우만 말하는 것일세.
첫 번째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경우
두 번째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 행운이 닥쳐서 막대한 부를 쌓은 경우
세 번째는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일해서 돈을 모은 경우
나는 저 세 가지 중에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큰 저택에 살지 못하는 것인데 혹시 이 경우를 제외하고 다른 방법으로 자네가 말하는 집에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파우사니아스 : 저도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독보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지혜를 전수받은 사람들이 감사의 표시로 두고 가는 사례만 모아도 충분히 큰 저택에 살 수 있으실 텐데 그것마저 마다하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소크라테스 : 확실히 사람들이 나에게 감사한 마음을 물질의 형태로 가져다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네. 하지만 파우사니아스여, 내가 그 사람들에게 일깨워주는 지혜는 본시 누구의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내면에 가지고 있던 지혜의 싹이 나를 만나서 피어났을 뿐이라네. 사과가 잘 익어서 사과나무에서 떨어질 때 내가 우연히 아래 있었다고 사과가 떨어진 것이 나의 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파우사니아스 : 하지만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가지고 있는 지혜의 싹을 틔워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자연의 밀알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그 밀알을 가꿔서 풍성한 밭을 이뤄낸 농부의 노력도 보답받을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요?
소크라테스 : 물론이네 파우사니아스여, 때문에 나는 누군가 지혜를 전파하면서 대가를 받는 일 자체를 부도덕하게 보거나 대가를 받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네. 단지 내가 앞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받고 싶지 않을 뿐이고 그래서 나는 큰 저택에 살 돈을 모을 수 없겠지.
하지만 파우사니아스여, 혹여 내가 행운의 여신의 축복으로 큰 저택에 살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집을 떠날 생각이 없다네. 혹시 그 이유에 대해 들어보겠나?
파우사니아스 : 네, 선생님. 어떤 이유에서 불편하고 작은 집에 머무는 삶을 택한 것입니까?
소크라테스 : 나는 내 인생에 필요한 것에 외적인 조건에는 네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네.
첫째, 비교적 장시간 비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집.
둘째, 배고프지 않을 만큼의 식량.
셋째, 마음을 다해 아껴주고 싶은 주변 사람들.
넷째, 그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여유.
이 네 가지 이외의 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인데, 자네가 말한 큰 저택은 저 네 가지에 포함되지 않을뿐더러 손에 넣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네. 하지만 인생은 덧없다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짧은데 그것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네. 혹시 이런 나의 대답이 자네의 의문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나?
파우사니아스 : 결국 선생님은 큰 저택이 삶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셔서 거기에 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군요.
소크라테스 : 바로 그렇다네. 자네보다 조금 더 살아본 사람의 경험에 따르면 우리가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네. 문제는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정작 중요한 것들은 놓쳐버린 다는 것이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몸을 혹사시키면서 자신의 수명을 은화와 바꾸려 하는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장 아끼고 보살펴야 할 가족과 친구들을 소홀히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는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죽는다고 해도 큰 저택의 침대에 누워보지 못한 것은 조금도 아쉽지 않다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자네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은 안타까울 듯싶구먼. 이것이 내가 선택한 삶이고 내가 무언가를 포기하고 얻은 것이라네.
파우사니아스 : 말씀을 듣고 나니 제가 사자에게 산양의 뿔이 필요하지 않냐고 권한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네요. 오늘도 선생님의 삶에서 앞으로 제가 걸어야 할 길을 밝힐만한 빛을 봤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제 안에 있는 지혜의 싹을 자라나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