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없이도 멋진 전문가의 세계를 말하다

머니볼 (2011)

by 나이트 아울
<출처 : http://recruiterbox.com/blog/sourcing-candidates-overlooked-pools-moneyball/ >


장르는 달라도 모든 영화는 작품의 바탕이 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등장인물에게 배경설정을 부여함으로써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인물에게 전문적인 영역을 다루게 하는 경우는 관객에게 그 부분을 이해시키는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수 없는데, 문제는 캐릭터 설명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이야기가 늘어지고 이런 과정을 생략하면 관객이 영화에 몰입할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는 최대한 설명은 간단히 하면서 이야기의 속도를 높이려는 방향을 선택하지만 베넷 밀러 감독의 2011년 작 '머니볼'은 상영시간을 다 할애해도 소개할 수 없을 것 같은 야구의 세계, 정확히 말하면 야구 매니지먼트의 세계를 다루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우선 이 작품은 야구나 야구 매니지먼트 세계 자체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설명이 나오는 부분은 주인공인 빌리 빈(브레드 피트)에 관한 부분과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머니볼' 이론인데, 감독도 잠깐의 설명 정도로는 관객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듯, 설명이 끝나고 난 후에는 머니볼에 대해 별다른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왜 주인공인 빌리 빈이 다른 사람들, 더 크게는 야구계 전체와 대립하는지는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야구나 머니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도 영화에 몰입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고요.




<출처 : http://www.filmofilia.com/23-hi-res-moneyball-photos-48334/ >


배경과 세계에 대한 설명이 없음에도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영화가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있는 소재가 야구 그 자체는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실제로 통상의 스포츠 영화에 등장하는 역동적인 경기 장면을 기대하고 간 분이라면 실망스러웠겠지만, 저에게는 설명과 분석, 그리고 말싸움만으로 야구 경기 이상의 긴장과 성취감, 승리와 패배를 그려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기도 했고요. 그리고 이런 성취가 가능했던 또 다른 이유는 빌리 빈 역할을 한 브래드 피트의 연기력에 있습니다. 한동안 '비중은 적지만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인물'의 역할을 반복해온 그의 모습에 조금은 실망하기도 했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어느 대배우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은 명연기를 선사했습니다. 베넷 밀러 감독이 머니볼 이후 촬영한 폭스 캐처에서 스티브 카렐의 전혀 다른 모습을 끌어낸 사실에 비춰보면 감독의 솜씨가 질 좋은 향신료처럼 풍미를 더 한 것도 분명하겠지만요.


많은 사람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전문가들의 세계를 다룬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국은 사랑 이야기로 흘러간다고 비판합니다. 그런 비판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세계를 그려내는 어려움을 생각하며 절반 정도는 이해해 주고 싶지만 머니볼 같은 작품을 보고 나면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는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야기에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은 거금을 주고 캐스팅한 배우도, 신선한 소재도 아닌 명확한 설정을 바탕으로 인물을 얼마나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으니까요. 저에게 머니볼은 이런 힘을 바탕으로 전문가의 세계를 아주 차분하고 관조적으로 다룬 걸작으로 기억될 듯싶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못마땅함' 이라고 써있는 듯한 표정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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