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감동을 대신하는 건조하고 강렬한 즐거움

빅쇼트 (2015)

by 나이트 아울
<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94120#1072521>


지난 몇 년간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코드는 전반부의 코미디, 후반부의 눈물로 대변되는 '웃음과 감동'이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영화에서도 흔히 나타나는데 , 실제로 몇몇 작품의 경우는 좋은 흥행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담 멕케이 감독의 2015년 작 ‘빅쇼트’는 최근의 흥행공식과 반대되는 방향을 선택했지만 무척이나 높은 성취를 이룬 작품입니다.


영화는 조금은 괴짜처럼 보이는 소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커다란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는지 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2008년까지 미국의 경제 상황을 보여줍니다. 영화 제목인 'Big Short'가 주식 용어로 '공매도'(개인 혹은 단체가 주식, 채권 등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하는 행위 - 위키 백과)였던 만큼 경제나 주식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어려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작품을 보는 동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자세하고 능수능란한 설명으로 관객을 스크린 안으로 들어오게 만듭니다. 그 설명하는 장면 자체가 무척이나 화려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다뤄졌기 때문에 오히려 설명하는 장면에서 더 집중해서 볼 수 있기도 하고요.




<출처 :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36842 >


하지만 제가 이 작품을 추천하는 이유는 웃음과 감동의 코드 대신 일촉즉발의 상황에 직면했음에도 위기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웃음기는 거의 없이 건조하게 그려내면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강렬하게 드러내는 데 성공한 몇 안 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물론 할리우드에서도 한동안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들이 연달아 나오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작품 모두 다루고 있는 현실의 사건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 대부분은 소재의 강렬함에 비해 그것을 다뤄내는 기술은 부족해서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 관객의 평가 모두 좋지 않은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반해 빅쇼트는 소재를 다루는 진지함은 잃지 않으면서도 영화적 재미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었고, 심지어 영화 후반부에는 벤 리커트(브레드 피트)의 대사인 "춤은 추지 마"라는 말을 통해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윤리적 태도를 놓지 않았습니다. 이는 많은 작품들이 소재의 강렬함을 더욱 이끌어 내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자세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과 상당히 대비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절실하더라도 형식이 '영화'인 이상, 영화적인 완성도와 재미라는 부분을 배제할 수는 없는데, 빅 쇼트는 그 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영리하게 관통함으로써 걸작의 반열에 오를만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최근까지 이어지는 감동과 눈물의 도가니가 조금은 식상하고 지겹게 느껴지신다면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와 강렬한 태양 아래서 태어난 것과 같은 이런 작품을 접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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