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미터

이와이사와 켄지 감독(2025)

by 나이트 아울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끝까지 버티는 자가 살아남는다."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다. 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노력은 배신당하기 일쑤고 끝까지 버티다가 홀로 벌판에 남아 굶어 죽을 걱정을 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는 일상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은 머리와 다른 방향으로 간다. 분명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임을 알고 있는데도, 포기하면 더 편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심지어 포기하지 않으면 파멸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순간에서 조차 누군가는 포기하지 못한다. 단 한 가지 질문 때문에


"지금 여기서 포기하는 것이 최선일까?"


당연히 답은 모른다. 문전성시로 발디딜 틈이 없는 점쟁이를 찾아가 물어보든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는 AI에게 울어보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 모든 존재들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처럼 보일 뿐 누구도 실제로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걸 모두가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믿고 싶다. 나보다 똑똑한 그 무언가가 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그런고로 나도 모른다고 이 글을 맺으면 그건 새해부터 이 글을 읽은 분들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그래서 나만의 '포기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한다.


나는 무언가를 포기하기 전에 이미지를 상상한다. 어떨 때는 큰 잔에 물이 차오르는 이미지였고 또 다른 때에는 큰 호수에 물이 점점 줄어가는 이미지였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넓은 운동장을 돌고 있는데 전광판에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가는 이미지였다. 관건은 내가 상상하는 이미지는 점점 상태가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 변화를 지켜보면서 포기의 순간을 갈음한다. 물이 다 차올라서 잔이 넘칠 때, 태평양 같던 호수가 말라 붙어 바닥이 보인다고 느껴질 때, 전광판의 숫자가 '0'으로 변화할 때, 그 순간이 내가 포기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은 반드시 온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면서 포기할지 여부를 생각하는 내 감정을 고요하게 직시하면 단 한 방울의 물이 더 컵에 떨어지는지, 호수가 어제보다 덜 흔들리는지, 도저히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전광판의 숫자가 변화하는지 여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힘들어도 그 길밖에 없다. 아니, 힘이 들기 때문에 그 길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나를 제외한 밖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절대로 답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을 고통스러울 절도로, 바늘이 심장을 찌를 정도로 아프다고 하더라도 응시하며 변화를 살펴야 한다. 다만 그냥 응시해서는 변화를 알 수 없으니 이미지를 떠올리기를 권하는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면 다들 복 받으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지만 새해에는 그동안 피하느라 응시하지 못했던 문제를 응시하며 스스로 변화해 보자. 그걸로 내 삶의 행복, 그게 아니라면 더 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전력질주해 보자. 그러면 당신은 그 문제의 안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와 당신 모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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