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4 : MTL은 결단하기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by 나이트 아울

비명 같은 사이렌 소리가 빗줄기를 찢으며 내 곁을 스쳐 갔다. 총성이 울린 뒤에야 뒤늦게 당도하는 순찰차의 비명, 그 찢어지는 소리. 평소라면 무심히 흘려보냈을 그 소음이, 오늘 밤엔 내 심장을 겨누는 칼날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나를 봤다면, 총소리를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나를 살인 용의자로 지목하기 딱 좋은 그림이었다. 나는 그렇게 이 장소에 어울리는 비참한 꼴을 하고 지금 이 순간에 놓여있다.


당장이라도 전력 질주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뛰어서는 안 된다. 이 도시의 밤거리를 미친 듯이 달리는 놈은 딱 두 부류다. 쫓기는 범죄자, 아니면 미친놈. 어느 쪽이든 누군가의 눈에 띄는 존재들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런 존재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억지로 고개를 쳐들고, 우산도 없이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현장에서 멀어졌지면서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가 되어갔다.


갈 곳은 없었다. 지친 몸은 집을 원했지만, 본능은 그곳이 무덤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이 판에 끌어들였을 때, 이미 내 집 주소와 신상 정보는 그 또는 그들의 타자기 위에서 보고서로 찍혀 나왔을 것이다. 지금 현관문을 연다면 낯선 불청객들이 나를 반길 테고, 내일 조간신문 사회면엔 '두 명의 살인 사건'이라는 헤드라인이 대문짝만 하게 실리겠지. '40대 남성이 12마리의 개를 옥상에서 집어던졌다'는 기사보다 훨씬 자극적인, '살인극으로 끝난 전직 경찰의 비참한 말로'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로 내 인생을 마감할 수는 없었다.


집도, 사무실도 갈 수 없다. 13년. 내가 경찰 배지를 달고 시카고 바닥을 구른 시간이다. 하지만 조직을 떠나온 지금, 내게 남은 건 손에 익은 권총 한 자루와 낡은 카메라, 그리고 쓸데없이 예민한 직감뿐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이런 밤에 사정을 설명하고 몸을 의탁할 친구 하나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뼈아팠지만 그것은 지금 내리고 있는 비와 마찬가지로 내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나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본능적으로 집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거리였지만, 오늘 밤은 가로등 불빛 하나하나가 나를 감시하는 눈동자처럼 섬뜩했다. 한참을 걷다 멈춰 선 곳은 시카고 역 인근의 허름한 모텔 앞이었다. 간판의 네온사인은 'O'와 'E'가 나가버려, 'MTL'이라는 기괴한 글자만이 빗속에서 깜빡거리고 있었다. 곰팡이와 눅눅한 욕망의 냄새가 입구부터 진동하는,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밑바닥의 안식처였다.


카운터를 지키는 주인은 말라비틀어진 명태 같은 비열한 인상의 사내였다. 그는 내가 건넨 젖은 지폐를 손가락 끝으로 집어 들며,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눈빛을 쏘아붙였다. 손님을 짐짝 취급하는 태도엔 직업의식 따윈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내게 필요한 건 친절한 미소가 아니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어주는 방 열쇠 하나였으니까. 그가 턱짓으로 가리킨 2층, 나는 말없이 열쇠를 낚아채 계단을 올랐다.


방 안은 냉골이었다. 눅눅한 벽지가 군데군데 뜯겨나간 꼴이 마치 내 처지 같았다. 씻을 기운조차 없었다. 나는 진흙투성이가 된 구두를 신은 채 침대 위로 쓰러졌다. 낡은 스프링이 비명처럼 삐걱거렸다. 축축한 재킷이 무겁게 젖어셔 나를 진흙탕으로 이끄는 것처럼 몸을 휘감아왔지만, 그런 불쾌감을 떨쳐낼 생각도 못한 채 천장의 얼룩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때였다. 감으려는 눈꺼풀 안쪽으로 아까의 섬광이 잔상처럼 끈질기게 떠올랐다. 내 등 뒤에서 터진 카메라 플래시. 그것은 총성보다 치명적인, 소리 없는 저격이었다. 현장을 빠져나오던 찰나, 비상계단을 내달리던 내 뒷모습은 필름에 완벽하게 박제되었을 것이다. 그 한 장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내가 살인 현장에 있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자, 목격자가 아닌 용의자로 둔갑시킬 족쇄였다.


생각이 꼬리를 물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것까지 의뢰인의 각본이었나? 타깃 제거가 목적이 아니라, 그 죄를 뒤집어쓸 허수아비가 필요했던 건가. 300달러는 수고비가 아니라 내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을 미끼 값이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설계된 함정이었다면, 나는 300달러라는 단꿈에 희희낙락거리며 제 발로 도살장에 걸어 들어간 멍청한 돼지나 다름없었다. 춤을 추며 도살장에 들어간 돼지라니. 그 돼지의 꿈이 목살 스테이크의 재료였을까.


더욱 혼란스러운 건 사진사의 정체다. 건너편 건물엔 분명 나 혼자뿐이었다. 먼지 쌓인 복도, 침묵하는 계단, 빈 방들까지 모두 확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누군가 총소리를 신호탄 삼아 내가 2층 비상계단으로 뛰쳐나올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유령처럼 기척도 없이 등 뒤를 노리던 그 빌어먹을 사진사는 누구란 말인가. 의뢰인의 부하인가, 아니면 이 판에 끼어든 제3의 불청객인가.


젠장


입안에서 쓴맛이 맴돌았다. 내 손에 쥐어진 패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방에 있는 카메라엔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새 필름뿐이고, 나는 총을 쏜 놈도, 나를 찍은 놈도 모른다. 성별조차 알 수 없는 유령들과 싸워야 한다. 이럴 땐 담배라고 피우면 좋겠지만 나는 담배는 피우지 않았다. 그리고 가방에는 보드카도 없었다. 앞에서 떠 올린 대로 나는 이 순간 철저히 혼자서 모든 것을 견뎌내야만 했다. 나는 낡은 매트리스에 몸을 뒤척이며, 선택지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은 지금, 남은 길은 세 갈래뿐이었다.


첫 번째, 제 발로 경찰서에 걸어 들어가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 것. 하지만 이건 너무 큰 도박이다. 단순 폭행 시비가 아니다. 사람이 죽었다. 지금 경찰에 갔다가는 내 입장이 정리되기도 전에 유력한 용의자로 수갑부터 차게 될 것이다. 그대로 체포되어 재판장으로 직행할 위험이 너무 컸다. 그들은 진실보다 당장 잡아넣을 범인을 원할 테니까.

두 번째, 이 도시를 떠나 도망치는 것. 당장 저 가죽 가방을 챙겨 연고 없는 다른 도시로 숨어드는 거다. 당장은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일단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까. 위험에서 무조건 멀어지는 것, 그것이 지금 내 본능이 외치는 살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내 손에 쥐어진 유일한 단서, 의뢰인이 알려준 사서함 번호를 쫓는 것. 사진을 받기로 되어 있던 작자가 누구인지, 이 거대한 연극의 연출가가 누구인지 직접 알아내는 것이다. 상황을 파악하기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동시에 제 무덤을 파는 가장 위험한 도박이기도 했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내 목을 조여 오는 올가미도 팽팽해질 테니까.


자수, 도주, 아니면 정면 돌파.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는 생사를 가를 단어 하나를 떠올렸다.


결단(決斷)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단어는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내게 '결단'은 희망찬 미래를 위한 도약대가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나 뼈아픈 실패를 상기시키는 방아쇠였고, 나를 이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파멸의 주문이었다.


17년 전, 내 구애에 눈길조차 주지 않던 그녀에게 끈질기게 매달려 기어이 결혼반지를 끼워준 것도 나의 결단이었다. 모두의 축복 속에 시작된 그 결단은, 5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혼 합의서에 도장을 찍는 또 다른 결단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3년 전, 경사 계급장을 미련 없이 떼어내고 경찰서를 나서서 다시는 돌아가지 않기로 한 것 역시 나의 결단이었다.


그 수많은 결단의 끝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 이름 모를 모텔 방에서 곰팡내를 맡으며 떨고 있는 나 자신뿐이다. 그 모든 선택들은 결국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던 것일까. 나는 이 비참한 미래를 향해, 그토록 많은 결단을 내려왔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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