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결단을 미룰 수는 없었기에 나는 명확한 것부터 따져보기로 했다. 내가 셔터를 누르기 직전 총소리가 울렸고, 누군가 쓰러졌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총에 맞아 죽은 자는 유령이 아니라 이 세상에 실존했던 인간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는 법이니, 그 흔적을 역추적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반면, 시체조차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건 이 일의 배후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거물이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가도, 라스베이거스 사막도 아닌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을 쏴 죽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을 수 있는 존재라니. 그런 놈을 쫓는 건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사형대로 걸어가는 길이다. 그땐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야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이 아직 내 곁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으로 몸을 일으켰다. 침대 맞은편에 놓인 낡은 TV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어젯밤 피사체를 살해한 범인이 이미 잡혔다는 뉴스가 나오기를. 내 손끝의 간절한 희망이 브라운관으로 전해지기를 빌며.
딸깍
플라스틱 버튼이 둔탁한 비명을 질렀지만, 화면은 요지부동이었다. 한 번 더, 이번엔 거칠게 내리쳤다. 여전히 묵묵부답. 정전기가 낀 검은 브라운관 위로 핏기 없는 내 얼굴만 유령처럼 비칠 뿐이었다. 브라운관에 비친 어떤 남자는 한없이 초라했고 겁에 질려 있었다.
순간 울컥, 뜨거운 것이 명치끝에서 치밀어 올랐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깊은 실망감, 그리고 고물상에나 처박혀 있어야 할 이 기계 덩어리에 대한 맹목적인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당장이라도 저 브라운관을 박살 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쥐었던 주먹을 힘없이 풀었다. 그래, 이것도 현실이었다. 버튼을 누른다고 해서 켜지고, 원하는 뉴스를 보여주는 친절한 세상 따위는 이 방 안에 없다. 그게 내가 처한 진짜 현실이다. 나는 그 불친절한 현실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머릿속은 엉망진창이고 시야는 흐릿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한다는 건 단순히 눈앞의 풍경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보고 싶은 희망 섞인 이야기에 시선을 뺏기지 않고, 잔혹한 사실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다.
나는 안전하지 않다. 이 낡은 문을 나서는 순간 총알이 머리를 꿰뚫을 수도 있고, 소리소문 없이 끌려가 건축 중인 아파트의 차가운 콘크리트 속에 영원히 묻힐 수도 있다. 두렵다. 죽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억지로 눈을 뜨고 질문을 던져보자. 이 퀴퀴한 모텔 방에 처박혀 있으면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되는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수습될 일인가? 만약 내가 ‘Yes’라고 답한다면, 그건 내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경험상 이런 순간에 공포를 피하려 보고 싶은 것만 보기 시작하면, 기다리는 건 파국뿐이다. 스스로 교수대에 올라 목에 밧줄을 걸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판이 사라져 가는 느낌. 이 서늘한 감각이야말로 내가 지금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명확히 알려주는 시그널이었다.
마지막으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6시 57분. 잉크 냄새가 채 마르지 않은 조간신문이 모텔 앞 가판대에 놓여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신문은 이 방 안에 없다. 이제 밖으로 나가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가야 할 곳은 정해졌다. 가방을 둘러메고 방문을 열자, 여전히 어두운 복도가 나를 반겼다. 아니, 나를 심연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어둠을 마주하자 방금 전까지 경멸했던 고장 난 TV와 허름한 모텔 방이 마치 에덴동산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곳은 파라다이스가 아니다. 낙원이라 믿었던 곳에서 추방된 어떤 남녀처럼, 나 또한 거역할 수 없는 힘에 떠밀려 황야로 나가야만 한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방을 나서며 스위치를 내렸다. 방 안에 어둠이 내려앉고 바깥의 어둠과 하나가 되는 순간, 막연했던 두려움은 비로소 실체 있는 현실로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