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6 : 그림자 속으로 다시 한 걸음

by 나이트 아울

모텔 문을 나서자마자 차가운 빗줄기가 뺨을 때렸다. 하늘은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잿빛 비를 쏟아내고 있었고, 거리는 내 처지만큼이나 어둡고 우중충했다. 바닥에 고인 빗물은 도시의 오물을 뒤섞어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있었지만, 내 셔츠에 묻은 보이지 않는 피비린내까지 씻어내지는 못했다. 마치 세상도, 내 비루한 현실도, 이 구질구질한 하루의 시작을 몹쓸 방식으로 축복해 주는 것만 같았다.


옷깃을 잔뜩 여민 채 구부정한 자세로 신문 가판대로 향했다. 주머니를 뒤져 25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 가판대 위에 툭 던졌다. 손에 집히는 대로 지역 일간지 하나를 낚아채는 순간, 가판대 주인의 시선이 내 얼굴에 머물렀다. 그 찰나의 눈빛. 그것이 단순히 비에 젖은 행인을 향한 동정인지, 아니면 조간신문 1면을 장식했을지도 모를 수배자와 눈앞의 남자를 대조해 보려는 것인지 알 길은 없었다. 나는 그 진실을 확인하는 것조차 두려워 도망치듯 등을 돌려 우중충한 빗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에 젖은 신문을 품에 안고 근처에 보이는 아무 다이너에나 발을 들였다. 문을 열자 싸구려 커피 향과 눅눅한 기름 냄새가 훅 끼쳐왔다. 벽에 걸린 시계는 7시를 간신히 넘기고 있었다. 뱃속은 텅 비어 위액이 넘어올 정도로 쓰라렸지만, 무언가를 씹어 삼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제 목격한 죽음의 잔상이 여전히 어깨를 짓누르고 있어, 내 위장은 그 무게를 견뎌낼 준비가 되지 않은 듯했다. 그래도 멍하니 서 있을 수는 없었기에 구석 자리에 처박히듯 앉아 간신히 입을 열어 블랙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축축하게 젖은 신문을 테이블 위에 펼쳤다. 1면 헤드라인은 온통 우울한 소식뿐이었다.


아메리칸 스틸, 대규모 해고 계획 발표… 노조 전면 파업 예고

굵직한 활자들이 비명처럼 지면을 채우고 있었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거대 철강 회사의 몰락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나는 지금 당장 생존을 위한 나만의 전쟁을 벌여야 했으니까.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넘기며 지역 뉴스면을 훑어내려 갔다.


그때였다. 빽빽한 활자들 사이에서 내 심장을 옥죄는 단어들이 튀어 올랐다.


유혈사태, 웨스턴 137번가, 리오 미스티코

찾았다. 내 눈이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기사에 따르면 사망자의 이름은 '퍼시 제임스', 60대 남성이었다. 사인은 흉부 총격에 의한 사망. 시카고 경찰청(CPD) 제5지구 수사반은 아직 밝혀진 사실이 없어 수사 중이라고 했지만, 기사 행간에는 '강도 살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뉘앙스가 짙게 깔려 있었다.


젠장, 너무 뻔하잖아.

입 밖으로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강도 살인, 혹은 갱단 간의 분쟁. 복잡한 사건을 빠르게 덮고 싶을 때 경찰들이 애용하는 레퍼토리였다. 내가 뱃지를 달고 있을 때나 지금이나, 살인은 문자 그대로 가장 무거운 강력 사건이다. 자살이나 사고사가 아닌 이상, 누군가가 명확한 살의를 가지고 방아쇠를 당겼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살인 사건 검거율은 급격히 추락했다. 경찰이 게을러지거나 범죄자들이 천재가 되어서가 아니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첫째, '묻지 마 범죄' 같은 면식 없는 범행이 늘었다. 가족이나 친구, 원한 관계를 뒤지던 전통적인 수사 기법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일면식도 없는 현대의 살인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둘째, 총기를 이용한 살인사건의 증가이다. 범인은 피해자와 몸을 섞을 필요 없이 멀리서 방아쇠만 당기고 사라진다. 현장에 남는 DNA나 지문 같은 물리적 증거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증거가 없는데 무슨 수로 범인을 잡는단 말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빌어먹을 마약이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살인이나 강도가 공포의 대상이겠지만, 치안 유지라는 거대한 판 위에서 경찰력의 1순위는 언제나 '마약과의 전쟁'이었다. 마약 산업은 천문학적인 돈을 낳고, 그 돈은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증명했듯, 이 세상은 돈의 마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치인, 관료, 언론인... 놈들은 돈다발만 쥐여주면 집에서 기르는 개와 다를 바 없다. 경찰이라고 예외일까?


물론, 아직 양심과 의지가 남은 동료들은 마약 조직이 도시를 삼키는 걸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자는 언제나 소수였고, 그 가망 없는 마약 전쟁에 경찰력이 모두 빨려 들어가는 사이, 다른 살인 사건들은 서류철 속에 파묻혀 잊히고 만다. 내가 경찰 뱃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나오며 마지막으로 목격했던 게 바로 그 현실이었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내 눈에 '강도 살인 가능성'이라는 문구는 사건을 적당히 뭉개겠다는 신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 내게는 유일한 희망이자 동시에 서늘한 경고로 다가왔다.


용의자의 신원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으며, 범행에 사용된 무기 또한 발견되지 않았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경찰은 헛다리를 짚고 있다. 즉, 놈들은 아직 밖에서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놈들이 경찰보다 기민하게 움직지는 알 수 없다. 현장에서 나를 촬영했던 자가 이 세상 어딘가제 존재하고 있다. 만약 그 사진이 사건의 배후에게 넘어간다면? 그들은 나를 진범으로 조작해 수배자로 만들고, 경찰의 손을 빌려 사건을 종결시키려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경찰이 나를 찾기도 전에 나를 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버리려 할지도 모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사건은 '용의자 사망'으로 깔끔하게 종결될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나를 이 세상에서 영원히 발견되지 않게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제 내가 쥔 단서는 두 가지로 좁혀졌다. 사망한 '퍼시 제임스', 그리고 의뢰인이 남긴 ‘22번가 우체국, 사서함 7742번’. 퍼시 제임스에 대해선 지금 내가 파고들 틈이 없다. 어설프게 조사하다간 경찰에게 내 정체가 노출되거나, 놈들의 레이더망에 걸릴 위험이 크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경찰보다, 그리고 놈들보다 먼저 사서함에 도달하는 것이다. 상황은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마치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폭우가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기분. 운전대를 놓고 싶었다. 차에서 내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부정할 수 없는 나의 현실이었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는 그칠 기미 없이 더욱 거세게 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이 사건에 휘말린 순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처럼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 빗속을 뚫고 한 노인이 낡은 쇼핑 카트를 힘겹게 밀며 지나가고 있었다.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친 노숙자였다. 빗물에 젖은 채 휘청거리는 그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순간 눈이 마주쳤다. 퀭한 눈동자. 그 안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지만, 어떻게든 오늘 하루를 버텨내야만 한다는 지독한 삶의 무게가 서려 있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갈 곳 없이 쫓기는 내 처지가 저 노인의 눈동자에 고스란히 비치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비참했다. 하지만 묘한 동질감과 함께 서늘한 깨달음이 뒤통수를 쳤다. 저 노인이 비를 맞으면서도 카트를 밀고 어디론가 나아가야만 살 수 있는 것처럼, 나 역시 이 자리에 멈춰 서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정지는 곧 죽음이다. 그것이 내가 직시해야 할, 저 빗물보다 차가운 현실이었다.


어느새 커피잔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여전히 목구멍은 꽉 막힌 듯 답답했고 위장은 음식을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몸속에 남아있는, 아주 오래전 형사 시절의 경험과 본능이 뇌를 때리며 소리쳤다. 지금은 이름조차 희미해진, 잠복근무 시절의 늙은 선배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어이 신입, 배 안 고파도 때 되면 쑤셔 넣어. 진짜 힘써야 할 때 뱃가죽이 등에 붙어 있으면 그냥 나가리 되는 거야. 그때 가서 뭘 좀 먹어둘걸, 후회해봤자 다 부질없어. 결국 세상일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버텨내는 거야.

맞다. 지금 내가 의지할 것은 오직 내 몸뚱이 하나뿐이다. 이 몸을 움직이려면 연료를 채워야 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졌다. 가야 할 곳도 정해졌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내쉬고는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다시는 이곳으로, 어쩌면 평범했던 일상으로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꾹꾹 눌러 담은 채,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웨이트리스를 향해 손짓했다. 오늘,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행위. 단지 그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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