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컨 세줄과 계란 한 접시, 그리고 커피 리필.
웨이트리스에게 짧게 말을 던지고는 다시 지저분한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입안은 까끌거리고 속은 여전히 뒤틀렸지만, 나는 서빙을 하는 웨이트리스의 화사한 미소 외에는 아무런 장점도 없던 어느 다이너에서 꾸역꾸역 베이컨과 달걀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씹는 행위는 생존을 위한 기계적인 공정이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22번가 우체국, 사서함 7742번’이라는 단서가 형사 시절의 낡은 데이터베이스와 충돌하며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경찰 배지를 달고 있던 그 시절, 사서함은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겉으로는 번듯한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업무상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곳은 그림자들의 안식처였다. 이름 없는 마약상, 사기꾼, 그리고 나 같은 처지의 인간들이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애용하는 '합법적인 은신처'였을 뿐이다.
사서함을 이용하려면 신분증과 주거 증명서가 필요하고 비용도 선불로 내야 하지만, 가짜 신분증이 판치는 이 바닥에서 그건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게다가 우체국은 친절하지 않다. 우편물이 도착했다고 연락해 주는 서비스 따위는 없다. 즉, 무언가를 기다리는 자는 매일같이 그곳을 제 발로 찾아와야만 한다는 뜻이다.
7742번 사서함의 주인
그가 누군지 알아내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야밤에 우체국 담벼락을 넘거나 직원에게 푼돈을 찔러주는 건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짓이다. 둘 다 불확실성은 너무 큰데 불확실한 위험이 실현되면 그 즉시 파멸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간단한 사실에 눈을 돌린 채로 벼랑 끝에 몰린 쥐새끼처럼 성급하게 움직이다가 철창신세를 지는 놈들을 수없이 봐왔다. 지금의 나는 공권력이라는 방패가 없다. 한 번의 성급함은 곧장 파멸이었다.
상황을 복기해 본다. 의뢰인은 내게 사진 촬영 시간은 못 박았지만, 사진을 언제까지 사서함에 도달하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한은 정해주지 않았다. 현시점에서 내가 예정대로 사진을 찍었는지, 아니면 겁에 질려 도망쳤는지 의뢰인은 아직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놈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다.
매일 직접 사서함을 확인하는 것.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었다. 우편물 물류 시스템은 기상 악화나 사고가 없는 한 시계태엽처럼 정확하게 돌아간다. 내 사무실 근처, 그로브 에비뉴에 위치한 돌턴 우체국에서 오전 9시에 우편물을 발송하면 22번가 우체국에 도착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건 전직 경찰인 나도 알고 있고 아마 의뢰인도 이미 알고 있을 정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벌어진 상황을 고려할 때 의뢰인이 직접 사서함을 찾아와 사진을 가져갈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아마 실제로 사서함을 찾아오는 사람은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의뢰인의 하수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계획은 이렇게 진행된다. 내일 아침 9시, 돌턴 우체국에서 22번가 관할의 가공의 주소로 빈 봉투를 보낸다. 보내는 이와 받는 이 모두 유령으로 채운 무의미한 우편물이다. 하지만 접수처 직원에게 슬쩍 던질 질문만큼은 유의미할 것이다.
지금 보내면 22번가에 우체국에는 몇 시쯤 도착합니까?
그 시간을 알아내면, 모레부터는 22번가 우체국 건너편이 내 잠복 장소가 된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우체국을 방문하는 사람 역시 둘 중 하나다. 업무상 매일 우체국을 방문해야 하는 업무가 있는 사람, 아니면 사서함을 매일 확인해야 하는 사람. 내가 확인해야 할 사람은 후자다. 우체국 인근에서 서서 매일 들어가는 사람의 숫자는 정해져 있다. 그 사람들이 몇 명인지 확인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우체국 내부에 들어가서 우편물을 보내는지, 아니면 사서함에 우편물이 도착했는지 여부만 확인하는지를 체크한다. 그렇게 추려내다 보면 매일 돌턴 우체국에서 발송한 우편물이 도착하는 시간 이후에 사서함을 확인하는 사람은 총 몇 명인지, 그리고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뒤에는 자신이 원하는 우편물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하여 돌아가는 길을 몰래 뒤 따라간다. 그들이 차량을 이용한다면 더욱 좋다. 자동차는 어딘가의 누군가에 등록되어야만 하는 물건이니까. 혹시 놈들이 나를 발견하다더라도 현장에서 나를 바로 잡아가거나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22번가 우체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중앙 경찰서가 있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이 미신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순찰차와 경찰관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납치나 살인을 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도리어 나는 안전할 것이다. 그렇게 몇 차례 허탕을 치다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의뢰인의 하수인이 누구인지, 그 하수인은 사서함에 있는 사진을 어디로 가져가는지.
하지만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가설이 고개를 들었다. 만약 의뢰인이 애초에 사진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면? 놈이 퍼시 제임스의 살해 현장에 직접 관여했고, 내 사진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나의 모습’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렇다면 사서함은 미끼일 뿐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신호를 기다리는 바보가 되는 것이고, 이미 놈들은 나를 진범으로 몰아넣을 완벽한 프레임을 완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실패는 유의미할 것이다, 왜냐하면 '리오 미스티코' 앞에서 벌어진 비극은 충동적인 사고가 아니라, 나를 파멸시키기 위해 설계된 정교한 덫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고에 엮인 것인지 아니면 사냥감인지를 아는 것이 생존을 위한 첫 발걸음이다.
시계는 어느덧 9시 10분을 향하고 있었다. 밖은 여전히 회색빛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도 축축한 재킷을 걸쳤다. 당장 내일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선 준비물이 필요했다. 비루한 자취방에는 미련을 둘 물건이 하나도 없었지만, 내 사무실에는 아직 버리지 못한 ‘내 과거의 일부’들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감상적인 의미가 아니다. 내 과거의 일부가 지금의 나에게 필요할 뿐이다.
놈들은 이미 사무실을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 나는 반드시 그곳에 들어가야만 한다. 나는 식탁 위에 지저분한 지폐 몇 장을 던져두고 다이너의 문을 나섰다, 그칠 줄 모르는 다시 차가운 빗줄기가 뺨을 때렸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었다.
정지는 곧 죽음이다. 나는 빗물 섞인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아직 찾아오지 않은 파멸로부터 애써 몸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했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에 애써 위안을 얻으며 나는 내 사무실이 있는 리버데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