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8 : 다음 기회라는 사치, 그 안의 현실.

by 나이트 아울

리버데일로 향하는 버스의 창문은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빗물로 얼룩져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인상파 스타일의 화풍을 어설프게 베낀 엉터리 화가의 그림처럼 강렬함을 비추고 싶었지만 흐릿했고, 그 어디에도 이 우울한 서사를 덜어줄 빛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덜컹거리는 버스의 진동 역시 지금의 우울한 현실에 박차를 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사무실은 낡은 상가 건물의 3층에 있다. 출입구는 정문과 비상계단, 딱 두 곳뿐이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건너편 건물의 창가에 자리를 잡고 망원경을 들이대는 것이다.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감시하는 방법도 있지만, 비 오는 날 좁은 차 안에 처박혀 몇 시간 동안 같은 지점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다. 내 경험상 어딘가를 감시하는 일은 너무 괴롭고, 비효율적이며 인간이라는 동물의 인내심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두 블록 떨어진 정류장에서 내렸다. 우산을 깊숙이 눌러쓰고 큰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형사 시절, 비 오는 날의 잠복근무는 늘 우산 때문에 망치곤 했다. 우산은 용의자의 얼굴을 가리는 완벽한 방패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내가 그 방패 뒤에 숨어,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그 지독한 어려움을 선물할 시간이었다.


사무실 근처에는 제인이 운영하는 단골 카페가 있다. 그녀가 내려주는 진한 커피 향이 간절했지만, 오늘은 그곳을 지나쳤다. 추적당하고 있을 때 익숙한 공간을 방문하는 건 자살행위다. 대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하지만 내 사무실 건물 정면과 주변 차량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낯선 카페로 들어갔다. 창가 자리에 앉자마자 블랙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사람들은 감시가 24시간 내내 빈틈없이 이루어진다고 믿지만, 그건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다. 거울을 봐라. 인간이란 존재는 고작 몇 분의 심심함도 견디지 못해 TV를 켜거나, 신문을 뒤적이거나, 창밖의 행인을 구경하며 집중력을 흩트린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감시자를 찾아내는 일은 감시하는 일보다 더 지독한 인내를 요구한다. 저 건너편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릴 놈들보다 더 오래, 더 집요하게, 신문이나 TV 따위에 한눈팔지 않고 버텨야 한다. 그게 싫다면 그냥 무턱대고 사무실 문을 열면 된다. 하지만 만약 내 예감이 맞다면, 그 문을 여는 순간 게임은 끝날 것이다. 끌려간 지하실에서 뒤통수에 닿는 서늘한 총구의 감촉을 느끼며 후회해 봐야 이미 늦었고, 다음 기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빗줄기를 뚫고 사무실 입구를 응시하며 나는 마음속으로 챙겨 올 물건들을 정리했다. 앞에서 예상한 대로 놈들이 정석대로 움직인다면 감시조는 2개 혹은 3개 조로 나뉘어 한팀당 8~12시간씩 근무할 것이다. 모든 교대 근무가 그렇듯, 새벽을 버틴 자들이 교대를 갈망하는 이른 아침이나 깊은 밤이 가장 취약하다. 내가 노려야 할 틈은 바로 그 시간이다.


가져와야 할 물건은 딱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책상 맨 아래 서랍의 이중 바닥에 숨겨둔 현금이다. 나는 그리 성실한 납세자가 아니었다. 의뢰인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수표 대신 빳빳한 현금 뭉치를 들고 나를 찾아오는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나 역시 그런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들이 다녀갔다는 증거를 은행에다가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그들의 비밀을 보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죽기 전까지는 돈이 필요할 것이다.


두 번째는 책상 맨 윗 서랍 상자에 담긴 콜트 1911 권총, 그리고 여분 탄이다. 내가 경찰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후 며칠 뒤, 아버지는 말없이 지금 내가 가져가려고 하는 1911 권총이 담긴 나무 박스 하나와 페더럴 사의. 45 구경 탄약 8박스를 내미셨다. 내 아버지는 말수가 적은 분이었지만 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인색함이 없었던 분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나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은 이 거친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바깥의 우중충한 풍경과 겹쳐져서 새삼스럽게 마음속에 아픔으로 느껴졌다.


젊은 시절의 나는 세상을 혼자서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내 능력과 젊음만 있다면 삶의 무게 따위는 가볍게 짊어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내 오만보다 훨씬 무거웠고 내 어리석음의 대가 역시 내 예상보다 가혹했다. 나는 점점 늙고, 약해졌으며, 어리석어졌다. 이제 나는 그 근거 없는 믿음에 대한 대가를 온몸으로 지불해야 한다. 그것도 철저히 혼자서.


테이블 위에 놓인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흉터가 남고 주름진 손등이 새삼 추하고 미워 보였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선택들의 결과였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내 손을 잡아줄 이가 단 한 명도 없다는 현실이 빗물보다 더 차갑게 가슴을 눌렀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주어진 일을 해내기 위해 버텨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끝나고 다음 기회라는 것이 있다면, 그때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야, 늙은이.


나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커피잔을 움켜쥐었다. 어제 총성이 울린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용케 살아남아 있다. 그래, 나는 아직 살아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상이 아니라 눈앞의 적에게 집중해야 한다.


사무실 입구를 지켜보는 저 수많은 시선 중 하나, 나를 파멸로 이끌 불청객의 존재를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 이 일을 무사히 끝내고 '다음 기회'라는 사치를 누릴 수 있다면, 그때 다시 시작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오직 살아남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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