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4 : 그래도 관짝보다는 낫다

by 나이트 아울

22번가(Cermak Road)에서 가장 좋은 숙소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내 눈앞의 **‘에식스 인(Essex Inn)’** 204호는 분명 천국이었다. 방으로 들어와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허물 벗듯 재킷을 벗어던졌다. 거의 이틀을 씻지 못했고, 온종일 시카고의 진득한 빗속을 헤치며 버텼던 탓에 옷에 들러붙은 우울함까지 한꺼번에 씻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비루한 천국에는 성경에 나와 있는 ‘생명수 강’이나 ‘생명나무’ 같은 거창한 보상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콸콸 쏟아지는 따뜻한 온수만큼은 허락되었다. 피부에 닿는 뜨거운 물줄기 아래서,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살아있기를 잘했다는 생경한 행복감에 휩싸였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몸을 눕히자마자 벽에 걸린 낡은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오전 10시가 조금 못 된 시각. 돌턴 우체국에서 보낸 그 ‘빈 봉투’가 22번가 우체국에 도착하기까지는 아직 4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잠복은 내일부터다. 오늘은 밖으로 나가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는 일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럴 체력도 없었고 앞으로의 잠복근무는 장기 전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너무 어깨에 힘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자, 예전 아내와 승진을 두고 다투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당시 우리 팀 전체가 몇 달을 추적한 끝에, 드물게 총격전까지 벌이며 은행 강도 일당을 검거한 사건이 있었다. 팀원 모두가 피를 흘리며 고생했고 그 작전은 내 인생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총격전이었다. 나는 그 사건의 끝에서 오른쪽 어깨에 9mm 탄두 지름만 한 구멍을 얻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지독하게 아픈 파상풍 주사를 제외하면 상처는 무사히 회복되었지만, 퇴원 후 돌아온 사무실의 공기는 어느 때보다 험악했다.


사건의 발단은 언제나 그렇듯 논공행상에 대한 문제였다. 우리 팀은 에어리어 2(Area 2) 소속이었으나, 범인들이 검거된 장소는 에어리어 3(Area 3) 관할인 **라신 애비뉴(Racine Ave)**의 한 아파트였다. 검거 전 에어리어 3 관할 경찰서에 협조를 구했고 사선에 뛰어든 건 우리뿐이었지만, 사건이 끝나자 부국장은 그 공을 에어리어 3 관할 경찰서로 넘기라는 압박을 가해왔던 것이다.

팀장은 노발대발하며 나를 부국장실로 끌고 가, 우리 팀원의 낫지 않은 상처를 벌써 잊은 거냐고 외치면서 항의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이미 정해진 미래를 보았다. 사무실에 부국장의 사위가 에어리어 3 관할 서에 근무 중이라는 소문이 도는 순간, 게임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군가는 내가 총에 맞았을 때 "이제 목에 금메달을 건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금메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없던 것이 사라지는 데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고 그 공기 같은 매달을 붙잡으려고 애쓴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자상한 장인어른은 그 매달을 기어이 빼앗아갈 것이다.


나는 기어이 웃통을 벗겨 총상을 보여주려던 팀장을 말리며 딱 한 마디만 남기고 사무실을 나섰고 일주일간 병원 치료를 이유로 사무실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다음 날 조간신문에는 부국장의 사위가 회수한 현금 뭉치 앞에서 장인어른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실린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세상 일이란 예나 지금이나 그런 법이었다.

이런 내 태도에 내 아내였던 어떤 사람은 내가 너무 물러터져서 세상을 살기 힘든 거라며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만약 지금 내 옆에 그녀가 있었다면, 왜 사무실 앞에 있던 감시자의 차에 뛰어들어 놈을 두들겨 패서 윗선을 캐내지 않느냐고 몰아세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행 강도 사건 때나 지금이나 내 판단은 한결같다. 폭력은 유용할 때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그러면 감옥행 프리패스 티켓이 자동 예약된다.

영화 속 탐정이나 경찰들은 무법자처럼 폭력을 휘둘러 답을 얻어내고 정의를 실현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우선 감시자의 옆구리에 권총을 겨누고 몇 대 때릴 수는 있겠지만, 그가 내뱉는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리고 나라면 그 순간 상대방이 원하는 정보를 주기보다는 난처해지는 정보를 주고 상황을 벗어나는 길을 택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 남자가 자기 윗선에 대해 누구누구라고 떠들든, 자기는 사무실에서 지시하는 대로 감시만 할 뿐이라 의뢰인이나 일의 내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든 나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럼 아내는 어딘가 으슥한 데로 데리고 가서 고문이라도 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지 않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정보를 얻고 나서 나에게 발톱이 뽑혀나간 그 불쌍한 남자가 경찰서로 기어가면 그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경찰이었던 내 경험을 떠올리지 않아도 내가 중형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사람을 죽이고 고문해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금발의 가슴 큰 여자를 껴안고 찐한 키스를 하는 장면까지만 촬영하기 때문에 그 후의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인생은 영화가 아니었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엄연히 현실이었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아마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화를 내면서 “그럼 죽여서 강에 던져버리면 될 거 아니야”라고 외칠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장점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자기가 손해 본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절대로 참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내의 분노는 이해한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일은 정말 쉽다. 뒷골목에서 싸구려 권총 한 자루를 구입해서 손에 쥐고 손가락에 힘만 주면 된다. 그게 끝이다. 하지만 시체를 없애는 일은 그것보다는 훨씬 복잡하다. 우선 시체를 강에 던지면 둥실둥실 떠다니다가 곧 발견된다. 그럼 죽인 자리에 시체를 두고 도망친 것과 아무 차이가 없게 된다.


시체가 떠다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토막을 내서 쓰레기봉투에 버렸던 많은 범죄자들이 내게 잡힌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쓰레기장에 일하는 사람들은 오래전에 코가 마비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시체가 썩는 냄새는 그 어떤 냄새와도 구분할 만큼 독특하다. 그래서 그들은 봉투를 열자마자 경찰을 부를 것이다. 염산으로 녹인다든지, 드럼통에 넣어서 시멘트에 굳혀서 강에 버린 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연쇄살인마를 장래 희망으로 삼고 미리 준비를 해둔 사람이 아니라면 집 근처에 있는 철물점을 들려서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준비를 했다가 내 손에 잡힌 바보들은 전부 전기의자 위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성하는 결말로 생을 마쳤다. 나는 단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런 바보들보다는 낫다고 자부한다.


이런 잡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나는 천장을 향해 오른손을 뻗어봤다. 이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사무실에서 보드카나 홀짝이며 TV 앞의 식은 피자 조각처럼 무의미한 시간을 죽이고 있었을 것이다. 편안하고 아무런 고민도 없었지만 그렇게 허비한 몇 년은 아무런 보람도, 활력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손끝에서는 활력이 돌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지금 지난 몇 년을 통틀어 가장 강렬하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내 손가락 끝에서 전에 없던 힘이 느껴졌다. 다시 창밖을 보았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정오가 다가옴에도 햇살 한 줄기 보이지 않는 어두운 날씨였다.


잠깐 느껴졌던 활력이 이 어둠에 눌려 사라지기 전에, 나는 눈을 감기로 했다. 30시간 만에 누워보는 침대. 관짝이 아니라 침대 위에 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이 지독한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무거운 눈꺼풀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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